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파이낸셜 포커스] 모기업 어려울때마다 돈 빼먹는 창구 전락

씨티銀 사태로 본 국내 외국계 은행 실태<br>MR계정 비과세 혜택 악용 본국으로 자금 송금 버젓이<br>외국인 지분율 높아져 금융지주사들도 심기 불편



이 정도면 '상습적'이라는 얘기가 나올 법하다. 올 들어서만 모기업인 미국의 씨티그룹을 위해 두 번째 배당에 나선 한국씨티은행 얘기다. 특히 이번에는 유럽발 재정위기로 어려움에 처한 미국 씨티그룹을 위해 사상 최대규모인 1,300억원의 배당을 결정했다. 지난 2004년 세계 최대 은행이었던 씨티은행과 후발 은행 중 알토란 같던 한미은행의 합병을 바라보며 선진경영기법을 배워보겠다던 시장의 기대가 무색해진지 오래다. 이는 비단 씨티에만 국한되는 문제는 아니다. 유럽발 재정위기로 해외 모기업의 어려움이 가중되며 국내에서 영업 중인 외국계은행들의 연쇄적인 자금유출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외국인 지분율이 높은 국내 금융지주사들도 현재의 상황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 다소 극단적인 비판일 수 있지만 국내 대형 은행들이 선진 금융자본의 돈 빼는 창구로 전락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형국이다. ◇외국계은행에 한국은 '곶감'=한국씨티가 이번 배당을 통해 미국 씨티그룹에 송금할 금액은 1,003억원. 한국씨티는 지난 4월에도 1,002억원을 배당했고 이중 800억원이 미국 씨티그룹에 들어갔다. 올 한 해만 한국씨티를 통해 미국 씨티그룹이 챙긴 금액만도 2,000억원에 육박한다. 여타 외국계은행이나 외국은행의 국내 지점은 그나마 배당이나 자본 유출 흐름을 파악하기조차 어렵다. 대표적인 사례가 SC제일은행이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SC제일은행이 2008년부터 올해 6월 말까지 영국 스탠다드차타드 본사 송금을 위해 'MR계정'에 3억4,796만달러(한화 3,969억4,600만원)를 계상한 것으로 밝혀졌다. 이중 2008년 9,415만달러와 2009년 8,663만달러는 이미 송금을 완료했으며 현재 국세청에서 지난해 분인 8,000만~9,000만달러 규모의 금액의 해외 송금을 위한 사전 심사가 진행되고 있다. 대규모 국부 유출이 또 한 차례 임박했다는 의미다. MR계정은 '공통경비'를 의미하는 것으로 모그룹이 각 자회사에 경영자문료나 용역제공에 대한 대가를 청구하는 것으로 비과세 혜택을 누릴 수 있다. 문제는 외국계은행들이 MR계정을 본국으로 자금을 유출하는 수단으로 악용하고 있다는 사실. 금융감독원의 한 관계자는 "MR계정 자체는 국제법상으로도 유효한 것이지만 MR계정을 적정하게 운용하고 있느냐가 관건"이라며 "일부에서는 MR계정의 폐쇄성과 비과세 혜택을 악용, 본국에 자금을 송금하는 창구로 활용하고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SC제일은행 외에도 한국씨티 등 외국계은행과 국내 지점을 두고 있는 HSBC 등 외국은행 역시 MR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실제 국부 유출의 규모가 외부에 드러난 수준을 초월할 것이라는 게 관련 금융계의 관측이다. ◇금융지주사들도 외인 주주 압력 증가=유럽발 재정위기가 장기화되며 국내 금융지주사들의 심기도 편치 않다. 주요 금융지주사들의 외국인 지분율이 높기 때문이다. KB나 신한ㆍ하나금융지주 등이 모두 60%대 안팎 수준이다. 그만큼 금융지주사들은 해외 투자가들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다. 특히 한국이나 신흥 국가의 금융시장은 성장속도가 가파르거나 수익률이 쏠쏠해 외국 주주들의 좋은 먹잇감이다. 금융지주사의 한 관계자는 "유럽 및 미국 등의 경기 상황이 침체를 거듭하며 해외 주주들의 배당 요구를 해오고 있다"며 "금융 당국에서 배당을 자제한 상황이라 중간에서 난처한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한국씨티의 사례는 올해 사상 최대 이익을 올린 다른 은행들에도 고민을 안겨주고 있다. 금융권의 한 관계자는 "시중은행에만 강도 높은 배당 자제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형평성에 어긋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어윤대 KB 회장은 금융 당국의 배당 자제 요구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실제 이번 한국씨티 배당액을 당초 2,600억원에서 1,300억원으로 줄이라고 감독했던 금감원의 한 관계자는 "사회 정서를 고려해 배당금액을 줄이라고 권고했을 뿐 근본적으로 배당은 은행이 자율적으로 결정할 사안이라 제재할 근거는 없다"고 말했다. 국부 유출에 대한 논란이 일어도 외국계은행에 대해서는 관대한 금융감독 당국의 오락가락한 잣대를 여실히 드러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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