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의사협회가 원격진료와 의료기관 영리자회사 설립 반대, 건강보험료 수가 인상 등을 요구하며 오는 10일부터 집단 휴진에 나선다. 의사들이 파업을 벌이는 것은 지난 2000년 의약분업 사태 이후 14년 만에 처음이다. 하지만 의사협회 내부에서도 파업에 대한 의견이 갈리는데다 병원급 이상과 보건소 등이 정상 운영하기 때문에 2000년 같은 의료대란은 발생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대한의사협회는 1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촌로 협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총파업 돌입에 대한 회원 투표를 진행한 결과 찬성 76.69%(3만7,472명), 반대 23.28%(1만1,375명)로 10일부터 파업에 나선다"고 발표했다. 2월21일 오전9시부터 28일 자정까지 진행된 이번 투표에는 의협 시도의사회 등록 회원 6만9,923명 가운데 69.88%,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등록된 의사 수 9만710명(2013년 기준)의 53.87%가 참여해 파업 요건인 '과반수 투표 참여, 과반수 찬성'을 충족했다.
노환규 의협 회장은 "원격진료와 의료 영리화 정책에 반대하고 잘못된 건강보험제도의 근본적인 개혁을 요구한다"며 "의사들은 이 가운데 어느 것도 포기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의협은 지난해 12월 같은 취지로 파업을 예고했으며 이에 정부가 의료계 대표와 만나 협상을 벌여 2월18일 의료 현안을 국회와 별도의 논의기구에서 처리하는 의·정 합의안이 마련됐다. 그러나 의사들은 자신들이 만든 합의안까지 부정하며 집단행동을 선택했다.
이번 파업은 의협과 대한병원협회가 한목소리를 냈던 2000년 의약분업 사태와는 다른 만큼 파업 영향력은 제한적일 것으로 예상된다.
우선 병원급은 이번 파업에 참여하지 않는다. 중대형급 병원 경영자협의체인 병원협회는 정부의 투자 활성화 대책에 대해 "의료법인의 경영난 개선을 위한 조치"라며 환영의 뜻을 밝혔으며 파업 대해에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실제 대형병원은 파업을 주도하는 의협과 달리 동요하지 않는 분위기다. 대학병원의 한 관계자는 "병원 소속 의사들이 투표기간에도 파업에 대해 얘기조차 하지 않을 만큼 이슈가 되지 못했다"며 "의협이 파업 이유로 내세운 원격진료와 의료법인 자법인 설립이 대형병원과 직접 연관이 없는 점도 이런 분위기에 영향을 주고 있어 파업에 동참할 대형병원은 거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병원이 문을 여는 이상 소속 의사들은 파업에 참여하기 어렵다. 지방 종합병원에 근무하는 한 의사는 "젊은 의사로서 '의료영리화 반대'라는 대의명분에는 공감하지만 월급 의사 신분이라 병원 측이 파업에 협조적이지 않으면 동참하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또 의료발전협의회에서 이미 쟁점 사안에 대해 절충점을 찾아 의정 공동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는 점이나 협의회 결과를 놓고 집행부와 협상단 사이의 내분이 표출됐다는 점도 동력을 약화하는 요인이다.
서울지역의 한 개원의는 "이미 협회의 요구로 정부와 협상을 하고 결과를 도출한 상태라 명분 싸움에서 졌다"며 "이 상태로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얻어낼 수 있는 것이 많지 않아 출구를 찾기가 힘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여론이 의사들에게 우호적이지 않다는 점도 부담으로 작용한다. 특히 2주 전 대대적으로 의·정 합의 결과를 발표해놓고 파업을 강행하는 이중적인 모습이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많다. 초등학생과 유치원생 두 자녀를 둔 성북구의 주부 김모(38)씨는 "최근 의사협회와 정부 간 협상이 잘 됐다고 들었는데 또다시 무슨 파업을 한다는 건지 이해가 안 된다"며 "개학철이 되고 환절기라 감기 환자가 많을 텐데 의원들의 집단 휴진으로 진료에 차질이 생길까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의협의 파업 결정에도 불구하고 반대 의사를 내비쳤던 동네 의원들이 얼마나 파업에 참여할지는 미지수다. 이에 따라 의협이 10일부터 파업에 들어가더라도 부분만 참여하거나 일시적으로 문을 닫는 식으로 한 뒤 정부의 대응을 보며 단계적으로 수위를 조절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동네 의사들이 실제 파업에 들어갈 경우 감기나 가벼운 질환으로 동네 의원을 찾는 시민들이 가장 큰 불편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중대형 병원이나 대학병원 보건소 등은 정상적으로 운영되므로 치료를 받을 수는 있다. 아울러 응급환자에 대한 조치도 정상적으로 이뤄진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의사들의 집단휴진이 강행되더라도 국민들이 보건소·병원·대학병원에서 진료를 받는 데 큰 불편이 없도록 모든 조치를 강구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