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 서비스 시장 포화… 법인 합병 땐 稅혜택 등 정부와 논의
집무실 소파 치우고 화이트 보드 설치… 일하는 세무사회로
예산-인사행정 투명하게 운용하고 무료 세무상담도 늘릴 것
"시장 개방에 대비하고 새로운 먹거리를 찾기 위해 세무법인도 대형화를 통해 경쟁력을 강화해야 합니다."
지난 20일 서울 서초동 집무실에서 만난 백운찬(사진) 한국세무사회장은 앞으로 세무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명쾌하게 제시했다. 각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따라 조만간 본격화될 세무 서비스 시장 개방에 대비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포화상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는 세무사 업계에 새로운 먹거리를 제공하는 일이다. 이제 취임 후 한 달여가 지났을 뿐이지만 33년3개월이라는 공직생활에서 쌓인 관록 때문인지 그의 발언 곳곳에서는 자신감이 묻어났다.
백 회장은 "국내에 대형 세무법인은 15개 정도에 불과하다"며 "세무법인 간 인수합병(M&A)이 이뤄질 경우 세제혜택을 주는 방식 등 다양한 방안을 정부와 논의해나갈 예정"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회계사와 노무사·변호사 등과 업무영역 다툼이 치열하고 정부의 납세협력비용 축소 방침으로 세무사 업계가 위협을 받고 있다"며 "회원들의 수익 창출 기회와 권익을 확장해나가고 세무사가 국민으로부터 신뢰받을 수 있는 전문 자격사로 인식되도록 협회 차원의 지원과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백 회장의 행보는 올 상반기 내내 관계와 세무 업계의 화제였다. 기획재정부 세제실장과 국무총리실 조세심판원장에 이어 차관급인 관세청장까지 지낸 그가 세무사회 회장 선거에 나선 것부터가 이슈였다. 세무사회 창립 53년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다. 선거 과정에서 각종 음해와 비난이 난무하는 등 일부 진통을 겪기도 했다.
하지만 그는 6월 말 네 명이 출마한 회장 선거에서 과반인56%를 득표해 임기 2년의 회장 자리에 올랐다.
백 회장은 "반장선거 빼고는 처음 치른 선거"라며 "선거 기간에 '죽기 아니면 살기'라는 생각으로 임했고 후보자들이 많은 상황에서도 득표율이 높았던 만큼 회원들의 지지에 무한한 책임감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는 전직 고위관료 출신답게 세무사회에 새로운 DNA를 이식하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회장실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던 소파를 다른 사무실로 옮기고 대형 회의 테이블과 화이트 보드를 비치했다. 직원들과 언제나 '브레인스토밍'을 할 수 있는 회의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서다. 이날도 직원들과 업계 현안을 논의하기 위한 각종 회의 자료가 탁자에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백 회장은 "회장실에 원탁과 소파를 두니 손님들이 찾아와 오랜 시간 머무르게 되고 일할 시간도 점점 줄어들었다"며 "말단 직원부터 담당 임원까지 회장실에서 실무회의를 추진하는 집무실을 만들고 싶었다"고 말했다. 취임 직후 "회장실 문은 언제든지 열려 있으니 수시로 찾아와서 같이 토론하자"고 제안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백 회장은 세무사회의 예산 집행과 인사 시스템 등 행정을 투명하게 운용하는 것에도 온 힘을 쏟을 예정이다. 세무사회의 한 해 예산은 140억원에 달한다. 예산의 45%가 1만2,000명 회원의 회비로 충당되는데다 조세 전문가들의 집단인 세무사회에서 예산 운용에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는 취임 직후 선거 과정에서 불거진 불신을 해소하고 소통하는 세무사회를 만들기 위해 젊고 유능한 세무사와 여성 세무사의 참여 비율을 높이는 인사부터 단행했다.
그는 "모든 조직은 제일 중요한 것이 인사와 예산"이라며 "능력 있는 사람이 승진하고, 중요한 자리에 가고, 예산 집행을 투명하게 하는 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그는 공직생활 때부터 후배들에게 강조해온 원칙 하나를 소개했다. "독방을 쓰는 사람만 똑바로 하면 그 조직 전체가 잘된다"는 신념이다. 백 회장은 "관료 때부터 국장에서 실장, 차관, 장관까지 조직에서 독방을 쓰는 사람이 제대로 일을 하면 밑에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다고 말해왔다"며 "세무사회도 회장이 원칙에 안 맞는 지출을 하면서 부하직원들에게 따르라고 강조하면 조직 전체가 무너지게 돼 있다"고 강조했다.
백 회장은 "나라가 바로 서려면 세금이 바로 서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만성적인 탈세로 국가부도 위기에 놓인 그리스의 사례에서 보듯 정부의 조세철학과 조세행정의 무게중심이 어느 쪽으로 기우느냐에 따라 국가의 명운이 갈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금을 직접 다루는 세무공무원과 세무사들에게 엄격한 도덕성이 요구되는 이유다.
그는 "민간인이 걸어가야 할 준법기준의 폭이 1m라고 하면 일반 공무원은 50㎝"라며 "그중에서도 국세청이나 관세청에서 근무하는 공무원들, 세무사들은 일반 공무원의 절반인 25㎝의 폭으로 걸어가야 한다고 후배들을 독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무조건 세금을 내지 않거나 덜 내고 보자는 국민들의 의식 변화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올해 상반기 최대 이슈였던 연말정산 파동에서 보듯 국민들은 단돈 몇 만원에 대한 세금 인상에도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법리에 맞게 업무를 수행했음에도 일부 피해를 보는 세무사들이 발생하는 것도 경기침체에 따라 세금 축소신고 유혹에 빠지는 국민들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백 회장은 "성실신고확인제도에 대한 세무사들의 불만이 상당하다"며 "고객인 납세자들이 영수증이나 기장을 주면서 국세청에 신고해달라고 하면 세무사는 일일이 조사할 수 있는 권한이 없어 그대로 신고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국세청의 세무조사로 문제가 발생하면 징계를 받는 경우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합리적으로 세무사의 책임을 다하면 징계 수위를 일정 부분 조정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세무사회는 2012년 '한국세무사회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이듬해인 2013년 첫 활동으로 총 350명에게 3억5,000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한 후 매년 수혜 대상과 금액이 늘어나는 추세다. 백 회장은 "단순히 전시행정을 위한 공익재단이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정신을 통해 국민들에게 사랑과 신뢰를 받는 전문 자격사로 거듭나기 위한 것"이라며 "세무사들이 언제나 어려운 이웃과 함께한다는 마음가짐을 갖고 지속적인 활동을 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국민들과의 접점을 넓히기 위해 무료 세무상담도 강화할 방침이다. 세무사회는 매년 납세자의 날(3월3일)과 세무사제도 창설기념일(9월9일)을 기념해 1주일간 전국 각지의 회원 모두가 무료 세무상담을 하고 있다. 그는 "세무사들이 국민들을 위해 무료 세무상담을 확대하면서 장기적으로는 무료 상담을 일종의 재능기부로 인정해주고 여기에 세제혜택을 주는 방안이 고려돼야 한다는 생각"이라며 "이는 기재부 세제실장으로 근무하던 시절부터 생각해왔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현금이나 물건 기부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는 세제혜택을 무료 상담 등 무형의 기부에까지 확대해 기부문화의 물줄기를 바꿔야 한다는 주문이다. 백 회장은 기부문화에 관심이 많다. 세무학 박사 학위 논문 주제가 '기부금 과세제도 개선 방안'일 정도다. 백 회장은 "우리나라는 선진국보다 기부문화가 뒤처져 있고 이는 국민정서보다는 세제 인센티브에 기인한다는 생각"이라며 "재능을 기부하는 것도 사회적으로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만큼 관련 내용을 정부 당국에 건의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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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강화·역량 키워 세무사 배지 자랑스럽게 만들것 박홍용 기자 |
/대담=김정곤 경제부
사진=권욱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