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세상 크게 보기

남자가 거세를 당하면 힘을 쓸 수 없게 되는 것일까. 반드시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명나라의 제독 정화는 12세에 포로가 돼 거세당했다. 그는 영락제로부터 “바다 건너 세상 모든 번국(藩國)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라”는 칙명을 받고 7차례에 걸쳐 ‘남해 대원정’을 감행했다. 영락제가 바다 건너 모든 번국으로부터 조공을 받을 생각을 하게 된 것은 중화사상 때문이다. 중국 초강대국으로 급부상 중화사상은 중국문화가 최고이며 모든 것이 중국을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오만방자한 사상이다. 이러한 중화사상은 중국의 통치자들과 백성들에게 그들이 세상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을 부여했고 중국의 정신적 구심점이 됐다. 그 결과 중화사상은 오늘날에도 중국이라는 거대국가를 결집시키고 중화의 기치 아래 모여들게 하는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중화사상이 워낙 확고하고 강건해 그들을 부러워 한 주변국들이 중화의 이념 아래 생존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고 스스로 그에 포함되고 싶어 하는 사대사상으로 발현됐다. 조선은 명나라가 망한 후 스스로를 소중화라고 자처한 적이 있었다. 역사는 되풀이되는 것인지 이 땅 위에 소중화 사상이 되살아 왔다. 그동안 미국의 도움을 받아 간신히 국가적 생존을 유지해왔던 우리가 이번에는 중국에 기웃거리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소중화가 될 꿈을 꿀 것이 아니라 중국과 자웅을 겨뤄야 할 시기에 처해있다. 자웅을 겨룬다는 뜻은 반드시 전쟁만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중국이라는 블랙홀에 함몰되지 않기 위한 대비가 필요하다. 이것은 가능의 문제가 아니라 당위의 문제이다. 역사란 씨름선수가 샅바 싸움 하듯이 국가와 국가간의 다툼의 과정이다. 그 다툼에서 이긴 나라는 역사를 보존하고 패배한 나라는 역사 속에서 사라져갔다. 고구려가 대륙에서 패권을 상실한 이후로 민족의 웅혼(雄渾)한 기상과 지배하려는 기질은 어디론가 사라지고 순응하는 민족, 복종하는 국민성으로 바뀌고 말았다. 이는 좋게 말하면 평화를 사랑하는 기질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지배에 익숙한 국민성인 것이다. 한반도에 갇혀 있었던 것 때문인가, 세계를 보는 시각도 협소하기 이를 데 없다. 기껏 해야 미국 아니면 중국 정도이다. 중국이 초강대국으로 부상하는 지금 중국에 기대려는 경향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 설정에는 신중을 요한다. 미국이 인권을 표방하고 세계 경찰의 기능을 자처해왔다면 중국은 인권의식이 희박하고 패권을 추구하는 경향이 아주 강하다. 특히 중국의 문화는 주변 국가들의 정체성을 허물어뜨리고 중국의 문화에 동화되게 해 마침내 중국의 지배를 면할 수 없게 하는 사례를 숱하게 보아왔다. 지리적으로 중국과 가장 밀접한 위치에 있는 우리로서는 자신도 모르는 순간에 정치ㆍ군사ㆍ문화ㆍ경제의 다방면에서 중국에 동화되거나 중국에 속국화될 위험마저도 없지 않다. 그것을 깨달았을 때에는 이미 늦다. 경제등 국가적 대응 전략 필요 그러므로 이러한 위험을 미리 예상하고 대비하는 국가적 준비가 필요하다. 중국과 긴밀한 협조는 하되 역사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중국의 특성을 무시하지 않고 경계를 게을리 하지 않으려는 자세가 필요하다. 진보적 시각에서 혹은 사회주의국가로서의 중국에 대한 환상보다는 역사적으로 중국이라는 국가가 주변국가에 끼쳤던 영향이 어떠했던가를 자각하고 중국의 부상(浮上)에 대한 국가적 전략을 마련하지 않으면 안된다. 작게 보면 남북통일이요, 탈미 친중이지만, 크게 보면 민족의 장래가 달린 심각한 결정을 해야 하는 중대한 국면이다. 과거에만 집착해 세계사의 중대한 흐름을 놓치게 되면 후회하게 될 것이다. 국면을 크게 봐야 한다. 세상을 크게 보지 못하는 상태야 말로 거세된 상태이다. /김영균 <대진대 법학과 교수·공정거래위 경쟁정책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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