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국發 금융위기] AIG 구제금융 이후의 월가

'워싱턴 뮤추얼' 진로 결정 내주가 고비<br>리보금리 치솟는데다 MMF 청산위기 몰려


미국 정부가 16일 밤(현지시간) 세계 최대 보험사 AIG에 850억달러의 브리지론을 지원하기로 함에 따라 AIG는 파산의 벼랑 끝에서 극적으로 벗어났다. 이에 따라 리먼브러더스 파산, 메릴린치 매각으로 파국으로 치달은 뉴욕 월가는 위기에서 한숨 돌렸다. AIG가 긴급 유동성을 확보함에 따라 월가는 도미노 파산 우려와 패닉의 공포에서 일단 벗어나게 됐다. FRB의 AIG에 대한 구제금융으로 아시아와 유럽 주식 시장은 ‘안도 랠리’를 연출했다. 미 금융당국이 결국 AIG에 생명줄을 내려줘 AIG 파산에 따른 월가의 도미노 붕괴는 일단 막았지만 월가 금융시장은 여전히 살얼음판을 걷고 있다. 국제금융거래의 지표 금리인 리보(런던은행간 금리)는 고공비행을 이어가고 있고 리먼 붕괴의 후폭풍은 점차 가시화하는 양상이다. FRB가 이틀에 걸려 1,400억달러의 긴급 유성을 방출했으나 월가에는 돈이 돌지 않고 있다. 이날 하루짜리 달러표시 리보는 전날보다 무려 3.33%포인트 급등한 6.44%에 거래됐다. 물론 AIG 구제 금융 결정 이전에 거래된 것이긴 하지만 시장의 자금 경색을 극명히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독일의 4위 은행인 NLG의 임케 제르시 트레이더는 “누가 부실에 노출됐는지, 누가 다음에 붕괴될지 아무도 모른다”고 암울한 자금시장 분위기를 전했다. 당장 급한 불은 ‘제2의 리먼’으로 지목되는 워싱턴뮤추얼의 진로. 영국계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 최대 저축은행인 워싱턴뮤추얼의 생존 가능성에 의문을 던졌다. FT는 “전날 무디스와 스탠더드앤푸어스(S&P)가 신용 등급을 정크본드 수준으로 강등하자 불안을 느낀 고객들이 예금 인출을 시도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워싱턴뮤추얼의 고객 예탁금은 현재 1,430억달러. 지난 2ㆍ4분기에 비해 50억달러 빠져나가 아직까지 뱅크런이 본격화한 양상은 아니다. FT는 그러나 “최근 금융시장 환경을 보면 100억~500억달러의 추가 유동성은 필요하지만 상황은 불투명하다”고 전망했다. 워싱턴뮤추얼은 현재 1년 만기 양도성예금증서(CD)의 금리를 5%로 높게 책정하는 등 유동성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워싱턴뮤추얼의 진로는 이번주 말과 다음주가 고비가 될 것으로 보인다. 리먼 파산의 후폭풍도 본격화하고 있다. 실제로 비교적 안전 자산에만 투자한다는 머니마켓펀드(MMF)조차 리먼 부실에 노출돼 펀드 청산위기에 몰릴 지경이다. 미국 1호 MMF인 리저브프라이머리 펀드는 리먼이 발행한 기업어음(CP) 등에 7억8,500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이날 이 채권을 전액 손실 처리했다. 리저브프라이머리는 고객들의 쇄도하는 환매요청에 단 이틀 새 자산이 230억달러로 60% 급감했고 순자산 가치는 주당 97센트로 본전에도 미치지 못하는 자본잠식(breaking buck) 상태에 빠졌다. 미국 MMF의 자본 잠식은 94년 이후 처음이다. 결국 이 펀드는 이날 환매를 일주일간 연기한다고 발표했다. MMF 수익률을 분석하는 크레인데이터의 피터 크레인 대표는 “MMF의 부실 노출은 전례 없는 충격”이라며 경악을 금치 못했다. 자금 시장의 동요에 FRB의 중립적 금리 정책이 금리인하 쪽으로 방향을 틀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FRB는 이날 오후 6월과 8월에 이어 또다시 금리동결을 했지만 인플레 상승압력에 대한 경고의 톤은 다소 완화하는 반면 경기하강과 신용위기에 대한 우려를 짙게 드러냈다. 블룸버그통신은 “FRB가 시장이 기대하는 금리인하를 걷어찼지만 금리인하의 여지를 남겨뒀다”고 평가했다. 페드워처(FRB 분석가)들은 FRB가 경제성장 위협 요인으로 그동안 성명서에 줄곧 담았던 에너지가격 상승을 빼고 수출 둔화를 꼽은 데 주목하고 있다. 그러나 FRB가 금리인하 기조로 전환한다고 해도 그 효과가 극히 제한적이어서 신용위기를 수습할 결정타가 되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손성원 캘리포니아주립대학 석좌교수는 “지금 시장은 유동성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신뢰성 위기를 맞고 있다”며 “금리를 내린다고 해서 문제를 풀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라고 진단했다. 손 교수는 “시장이 얼마나 고통을 감내하고 주택시장이 얼마나 빨리 회복되느냐가 신용위기의 끝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브리지론(bridge loan)=유동성 위기에 몰렸거나 기업 인수 등으로 급전을 조달해야 하는 기업이 필요 자금을 충당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고금리로 일으킨 단기자금을 말한다. 자금 수요 시점과 조달 시점 간의 시차를 맞추는 다리(bridge) 역할을 하는 의미에서 나왔다. 브리지론을 일으킨 기업은 자금 시장이 호전되면 단기 차입금을 중장기 저리 자금으로 전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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