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면피공화국] 5. 흔들리는 국책사업

수조원대 사업 졸속추진 '혈세먹는 하마' 전락"한해 유입되는 물이 고작 3억톤인데 저수용량 1억8,000만톤짜리 호수를 만든다는 것은 무모하기 짝이 없는 일이었습니다. 호수로 들어온 물이 바다로 빠져나가기까지 180일이나 걸리는데 썩지 않으면 이상한 일이죠. 하지만 정부는 수질을 개선하면 된다며 버텼어요."지난 96년 5월 "시화호 담수화는 불가능하다"며 정부를 상대로 사업 포기를 요구하며 연일 시위를 벌였던 모환경단체 J씨의 말이다. 이로부터 5년이 지난 올 2월, 정부는 담수화 포기를 공식 선언했다. 방조제 건설비까지 합치면 1조원이 넘는 피 같은 세금만 날린 셈이다. 대형 국책사업들이 비틀거리고 있다. 시화호는 단적인 예에 불과하다. 현재 진행 중인 국책사업은 인천국제공항ㆍ경부고속철도ㆍ새만금 등 사업비가 1조원이 넘는 것만 39건에 사업비 총액이 104조원에 이른다. 이는 한해 예산과 맞먹을 정도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업들이 주먹구구식인데다 예산배정도 정치적으로 이뤄지다 보니 사업비가 눈덩이로 불어나는 일이 허다하다. ◆ 대형 국책사업은 혈세먹는 하마(?) 83년 김포국제공항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자 전두환 당시 대통령은 북한의 미사일 사정거리에서 벗어났다는 이유만으로 후보지를 냉큼 청주로 결정해버렸다. 그러나 연간 이용객 250만명을 목표로 97년 출범한 이 공항은 지금 한해 이용객 53만명의 '동네공항'으로 전락했다. 경부고속철도 사업은 대전과 대구역사의 지하ㆍ지상 설치를 놓고 오락가락하는 바람에 설계가 무려 230여차례나 변경됐다. 이 과정에서 공기는 98년에서 오는 2010년으로 늘어났고 사업비도 5조8,000억원에서 18조4,000억원으로 치솟았다. 서울시 2기 지하철도 똑같은 경우다. 계획이 확정되기도 전에 설계에 착수하는 졸속 추진으로 103회에 걸쳐 설계가 변경되면서 사업기간 연장은 물론 사업비도 4조6,000억원에서 9조7,000억원으로 늘어났다. ◆ 졸속추진이 가장 큰 이유 이처럼 국책사업들이 대부분 실패하거나 예산의 블랙홀로 전락하는 가장 큰 이유는 정치적으로 사업이 결정되는데다 그나마 계획성 없이 졸속으로 추진되기 때문이다. 새만금 사업의 경우 환경피해 여부에 대한 진지한 검토 없이 지역균형개발이란 명목으로 5공화국 이후 선거 때마다 정치권이 단골공약으로 내세워 사업을 추진하는 바람에 심각한 국론분열만 가져왔다. 이에 대해 책임소재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고 있다. 김헌동 경실련 국책사업감시단장은 "사업비를 책정했으면 계획대로 됐는지 평가를 의무화하고 타당성을 주장하는 사람들의 이름을 공개해 반드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말했다. 여영학 환경운동연합 공익법률센터 부소장은 "환경영향평가나 사업타당성검토를 엄격히해 잘못된 정책을 사전에 걸러주는 게 중요하다"고 전제하고 "만일 공직자가 정책 결정과 집행을 잘못해 국고 손실이나 환경피해 등을 입혔을 때는 배상 책임을 지우는 국고손실 배상제 도입도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오철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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