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대형 아파트에서 한국의 여러 은행 임직원에게서 수시로 골프와 저녁 술대접을 받으며 왕처럼 살고 있다. 포르쉐로 출근하고 매일 평균 3명의 여자에게서 밤을 같이 보내자는 제의를 받고 있다”
지난 2001년 봄, 지금은 한 시중은행의 대주주로 있는 모 미국계 투자회사의 서울사무소에서 근무하는 20대의 한국계 직원이 한국에서 `왕`처럼 살고 있다면서 해외 친구들에게 자랑삼아 보냈다는 e메일이 언론에 공개돼 파문이 인 적이 있다. 당시 국내에서는 사실여부를 떠나 `전근대적 지하 접대문화`니 `금융사대주의`니 하는 거센 비난이 계속됐다.
이 때만 하더라도 해외 투자기관들은 한국에 외환위기후 이어진 은행권의 구조조정 바람을 타고 직간접적인 자본투자나 부실채권 매입 등을 통해 막대한 돈을 투자하고 있었다. 국내은행들로서도 당장 `생존`이 급했기 때문에 `돈`이 있는 곳이면 무조건 찾아가 메달릴 수 밖에 없었다.
이들 해외 투자기관들은 이 같은 상황을 이용해 수익성이 높은 곳을 찾아 집중적으로 투자한 뒤 적정 수익률을 올리면 곧바로 회수하는 전형적인 `치고 빠지는 식`의 전략을 구사했다.
지난 99년과 2000년에 각각 제일은행과 한미은행을 인수한 뉴브리지캐피탈과 칼라일이 최근 다시 국제금융시장의 자신들의 지분을 `매물`로 내놓았다. 당시 이들이 시중은행을 인수할 때도 목표이익을 달성하면 곧 빠져나가는 `단기 투자펀드`에 경영권을 넘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우려가 제기됐으나 이들은 `장기투자`임을 강조하면서 이를 일축했다.
그러나 칼라일은 지금 정부와 약속한 지분매각 제한기간이 풀리기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원매자를 찾고 있고, 뉴브리지 역시 지분매각을 위한 막후협상을 벌이고 있다. 안정적인 은행경영보다는 은행을 마치 신탁상품의 운용대상처럼 활용해 왔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다. 그렇다고 이들을 무작정 비난할 수도 없다. 그들로서는 투자자들에게 의무를 다하는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이기 때문이다.
요즘 또 다른 미국계 펀드인 론스타로 경영권이 넘어간 외환은행 직원들도 “과연 누구를 위해 일해야 하나?”라는 마음 속에 착잡한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자본확충에 성공했다고 좋아한 것도 잠시, 베일에 가린 대주주의 속을 몰라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이진우기자(경제부) ra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