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부도옹의 부도/박원배 산업1부 차장대우(기자의 눈)

우리는 흔히 우여곡절이 많은 사람의 인생을 『파란만장하다』나 『드라마 같다』고 표현한다.파란만장이란 「물결이 만길 높이」로 「인생을 살아가는데 있어 기복과 변화가 심하다」는 뜻이다. 드라마에는 갈등과 조화, 반전, 클라이맥스 등 인간사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온갖 장치가 들어있다. 우리나라의 많은 기업인 가운데 「파란만장」과 「드라마」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사람이 바로 정인영 한나그룹명예회장이다. 그의 77년 인생은 「파란만장의 드라마」 그 자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로 태어나 독학으로 일본유학까지 다녀온 뒤 형(정주영 현대그룹명예회장)과 함께 현대의 기초를 닦았다. 70년대 중반 독립을 선언, 현대양행(현한국중공업)을 세웠으나 80년 신군부에 이 회사를 빼앗기면서 시련은 시작됐다. 그러나 이것도 「중공업보국」이란 그의 신념과 꿈을 꺾지는 못했다. 이후 두번째 시련이 왔다. 89년 뇌졸중으로 좌반신이 마비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휠체어에 의지해 1년의 2백일 이상을 해외활동으로 보내면서 매년 재계순위가 2∼3단계 뛰는 고속성장을 거듭했다. 「휠체어의 불도옹」이란 별명은 그의 오뚜기인생에 대한 훈장이었다. 그러나 한라는 지난 6일 끝내 무너졌다. 방만한 경영은 그의 남다른 신념과 오기를 한순간에 꺾어 버렸다. 국내 최대그룹 창업자가 형으로 있고, 불과 3일전 채권은행단이 『지원하겠다』고 밝혔으며, 기아사태 이후 두번째로 큰 파장을 가져올 것을 뻔히 아는 정부의 힘으로도 부도옹의 세번째 시련을 막을 수는 없었다. 정도의 차이는 있을 지 몰라도 이것이 우리나라 기업들이 처한 현실이다. 홀로서기가 아니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절박한 현실이다. 한라가 최종부도 처리된 6일 정명예회장은 서울에 없었다. 한라시멘트 옥계공장에서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었다. 좌절하지 않고 재기를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는 의지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고 그룹관계자들은 해석했다. 부도옹이 부도를 딛고 다시 재기에 성공해 새로운 신화를 만들 것인가. 정명예회장의 나이나 한라그룹의 상황, 경제환경을 감안하면 그런 희망을 갖기 어렵다지만 그래도 희망만은 버리고 싶지 않은 것은 기자만의 심정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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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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