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7월10일] 크세노폰 & 경제학


찌는 듯한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기원전 401년 여름날. 페르시아 내전에 동원된 그리스 용병부대에 혹서를 잊게 할 공포가 밀려 들어왔다. 자신들을 고용한 페르시아 왕자가 살해됐기 때문이다. 외국인 반역자로 몰려 비참한 죽임을 당하게 될 상황에서 크세노폰(당시 30세ㆍXenophon)이 나타나 목청을 높였다. ‘똘똘 뭉쳐 아테네로 돌아가자.’ 고국에서 2,400여㎞나 떨어진 페르시아 한복판. 그리스 만인대는 동상과 영양실조, 갖은 질병에 시달리고 20개 이상의 이민족과 싸워가며 고향을 떠난 지 1년8개월 만에 대부분 살아 돌아왔다. 그렇지 않아도 부유한 시민의 자제이자 소크라테스의 애제자였던 지식인 크세노폰은 영웅으로 떠올랐다. 대탈출을 기록한 그의 저서 ‘아나바시스(소아시아 원정기)’는 훗날 알렉산더의 동방원정에 길잡이로 쓰였다. ‘동양에 대한 서구의 군사적 우위’가 이때부터 굳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1999년 7월10일 영국 리버풀대학에서는 크세노폰이 이끈 만인대 2,400주년을 기념하는 국제학술대회가 열리기도 했다. 스승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보고 아테네를 저주하며 떠난 그는 스파르타에 머물며 ‘향연’을 비롯해 수렵과 기마술까지 아우르는 숱한 저술을 남겼다. 아테네의 민주정보다 스타르타식 전체주의를 선호해 오늘날 네오콘의 조상격이라는 평가까지 받는 그가 남긴 저술 가운데 무엇보다 눈길을 끄는 것은 ‘오이코노미코스(Oikonomikos)’. 집을 뜻하는 그리스어 ‘oikos’와 관습이나 법을 의미하는 ‘nomos’의 합성어인 오이코노미코스는 가정사보다 효율적인 농업경영과 분업을 주내용으로 담았다. ‘경제학(economics)’라는 단어도 오이코노미코스에서 나왔다. 크세노폰을 최초의 경제학자로 분류하는 시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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