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윤선 새누리당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26일 브리핑에서 "김일성의 신년사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김일성의 초상화 앞에서 묵념하고 회의를 시작하는 분들, 국회에서 최류탄을 터뜨린 분들, 그런 사람들이 국회에 대거 입성해 원내교섭단체를 이루고자 하는 것이 통합진보당과 민주통합당의 목표"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민주통합당은 "색깔론을 꺼내드는 것은 스스로 유신독재의 후예임을 입증하는 것(김현 선대위 대변인)"이라고 일축했다.
북한 변수는 지난 1997년 금융위기가 벌어지기 전까지 보수정당의 승리를 가져왔다. 노태우 대통령을 탄생시킨 1987년 대선 직전에는 북한의 대한항공 폭파사건이 발생했고, 김영삼 대통령이 이긴 1992년에는 대규모 간첩단 사건이 김대중 당시 후보에게 타격을 입혔다.
그러나 1997년 대선 직전 신한국당이 안기부와 함께 북한의 총격전을 기획했다는 '총풍 사건'이 알려졌지만 이미 '경제살리기'를 우선한 국민은 김대중 정부를 선택했다.
이후에도 정치권은 북한 변수를 자극했지만 총선과 대선 등 큰 선거에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김대중 정부가 2000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발표했지만 사흘 후에 열린 4ㆍ13 총선에서 한나라당이 민주당에 승리했다. 2002년 대선 직전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 결의안을 정면으로 거부하며 북핵 위기가 닥쳤지만 '전쟁이냐 평화냐'로 맞받은 노무현 대통령이 승리했다. 특히 당시는 주한미군에 의한 여중생 사망사건으로 전국에서 촛불시위가 일어나는 등 반미 이슈가 정국을 장악했다.
최근에도 새누리당은 2010년 6ㆍ2 지방선거 직전 발생한 3ㆍ26 천안함 사태가 보수층의 결집을 불러올 것으로 기대했지만 역풍을 맞았다. 당시 정부는 공식 선거운동 개시일에 천안함 사태가 북한의 소행이라고 발표하면서 군사적 긴장을 선거에 이용한다는 논란이 벌어졌다. 실제 선거 직후 동아시아연구원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 응답자의 70%가 천안함 사태를 정치적으로 활용한 의도가 있다고 답했다. 오히려 응답자는 초등학교 무상급식과 4대강 사업, 세종시를 투표에 영향을 미친 변수로 꼽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