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사무실을 방문해 젊은 여직원을 만나서 대화를 나누는데 책상 위에 '저는 최고가 되기보다는 최선을 다하려고 합니다'라는 글이 써 있는 것을 보았다. 나는 이 글을 보면서 여직원에게 정말로 아름다운 생각을 가지고 있다고 칭찬을 해줬다.
그후 최고와 최선에 관해 이렇게 저렇게 생각해보았다.
성경에 보면 마태복음 25장에 '달란트 비유'가 있다. 다섯달란트와 두달란트를 받은 사람이 열심히 일해 두배로 만들었다. 주인은 이 사람들에게 다 잘했다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한 달란트를 받은 사람은 그대로 가지고 있었으므로 주인에게 저주를 받는다. 이러한 예를 보면 주어진 여건에서 최선을 다하면 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세상은 야속하게도 최고만을 기억하려는 경향이 있다. 물론 최선을 다했으니 최고도 됐다면 가장 이상적일 것이다. 반대로 최선을 다하지도 않았는데 최고가 됐다면 여기에는 공평성의 문제가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최선을 다한 최고를 칭찬해줘야 할 것이다.
삶의 자세는 항상 최선을 다한다는 마음가짐에서 시작해야 한다. 최고가 삶의 목표가 될 때 우리의 삶은 조급해지고 불안에서 헤어나지 못할 것이다.
최선을 삶의 목표로 하면 우선 쓸데없이 욕심을 부리지 않을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삶의 목표를 달성하려고 하므로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좌절하고 원망하지 않을 것이다.
지혜로운 삶은 '할 수 있는 것'과 '할 수 없는 것'을 빨리 구별해 할 수 있는 것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목표를 달성함으로써 만족하는 것이다. 할 수 없는 것 때문에 불평하면서 만족스럽지 못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일하는 모습은 분명하다. 최선을 다한 모습이 최고를 위해 일하는 것보다 순서가 앞서야 한다. 최고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이 아니라 최선을 다하다 보면 최고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서양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중에도 '최선을 다하라'라는 말은 자주 듣지만 '최고를 하라'는 말은 별로 듣지 못했다. 최선을 다하는 것을 소극적이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만 최선을 다한 최고가 아름답기 때문에 최선이 최고를 우선하는 것이라고 믿는다.
송자 대교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