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이번 사태는 기재부의 '실패'라기보다 '공약'이라는 도그마에 빠진 박근혜 정부의 패착이다. '약속'은 최고의 가치지만 현정부는 모순된 약속을 지키겠다는 '도그마(교리)의 덫'에 빠졌다. 전문가들은 ▦(공짜) 복지 ▦공약가계부 ▦(경제민주화 등) 분배의 일방적 흐름 등 세 가지를 도그마의 덫으로 꼽고 여기에서 빠져나와야 경제 선순환은 물론 성공적인 임기를 보장할 수 있다고 조언한다.
우선 '공짜 복지의 도그마'다. 복지에는 재원이 필요하다. 세금을 더 걷거나 빌리거나 둘 중 하나다. 그런데 현정부는 증세 없는 복지, 즉 '공짜 점심'이라는 실현 불가능한 약속을 했다.
여기서부터 해괴한 논리가 등장했다.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 없는 증세'라는 논리다. 정부는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명목의 세금을 걷지 않은 만큼 증세하지 않는다는 약속을 지켰다고 강변하지만 이는 일반 정서와 동떨어진 논리라는 것을 이번 사태가 단적으로 입증했다. 납세자는 '내가 실제로 얼마나 더 부담하느냐'에 관심을 갖기 때문이다. 전성인 홍익대 교수는 "증세 없이 복지를 확대하겠다는 공약을 억지로 지키려다 보니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을 하지 않았으니 증세가 아니다'라는 이상한 논리가 등장했다"고 말했다.
이런 공짜 복지의 도그마는 '공약가계부의 도그마'로 연결됐다. 정부가 5월 말 발표한 공약가계부는 겉으로 그럴 듯하지만 실상은 숫자 맞추기에 불과하다. 세율인상이나 세목신설 없이 재원을 마련하려니 비과세ㆍ감면 정비 18조원, 지하경제 양성화 27조원 식의 숫자만 나열한 채 근거는 제시하지 못했다. 지방공약 가계부도 마찬가지다. 박 대통령은 일부 지방공약의 타당성에 의문이 제기되자 "사업성만 보고 시행 여부를 판단하지 않겠다"는 위험한 발언까지 했다. 4대강 사업을 밀어붙여 차기 정부에까지 부담을 준 이명박 정부의 실책이 오버랩된다.
또 다른 실책은 '분배의 도그마'다. 특히 경제민주화는 강자와 약자라는 이분법의 덫에 걸려 어느 한쪽의 지지도 받지 못하고 있다. 정부 고위관계자는 "분배의 도그마에 빠지다 보니 사회 전체가 합리성을 잃었다"라며 "'성장이 곧 복지'라는 평범한 진리를 되새길 필요가 있다"고 고백했다. 김태일 좋은예산센터 소장은 "복지와 증세는 필요충분 조건이라는 점을 명확히 하고 적정한 복지수준과 세부담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