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 급락은 내년초가 문제」외환시장 관계자들의 한결같은 전망이다. 외환전문가들은 『1주일 남은 연말까지 환율 1,200원대를 방어할 수 있겠지만 연초에는 급락이 불가피할 것』이라고 보고 있다. 초단기 안정, 중장기 불안이라는 얘기다.
체이스은행 서울지점 이성희 부장은 『무엇보다 중요한게 정부의지』라고 전제하며 연말까지 환율이 1,200~1,210원대에서 움직일 것으로 전망했다. 그는 그러나 『연말까지 성업공사 ADB관련 인위적 매수세로 환율을 1,200원선에서 방어할 수 있겠지만 내년초에는 정부가 쓸 수 있는 재료도 별로 없어 1,150선까지 밀릴 수도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스탠더드앤드차터스은행 한주엽 과장도 『연말까지 환율은 1,200~1,220원선에서 움직이나 연초에는 달러 약세요인이 시장에 그대로 반영돼 환율도 1,100원선 아래에서 형성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연말까지 환율이 안정될 것으로 보는 이유는 정부가 간접개입을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외환당국이 사용중인 환율 방어 카드는 두가지. 하나는 국내은행 해외지점의 부실채권을 성업공사 매입하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시아개발은행의 채권 상환을 위한 달러의 조기 조달이다.
정부가 성업공사의 달러 매입에 약 7억달러, 아시아개발은행 관련 달러수요에 7억달러 등 14달러의 인위적 수요를 할용하고 있는 것이다. 이 정도 물량이면 하루 10억달러 이내인 서울외환시장의 미세 조정이 가능하다. 22일 외환시장도 당초 전일보다 7원 올랐지만 여전히 1,100원대인 1,199원에서 시작, 시간이 흐를수록 환율이 오르는 모습을 보였다. 단기 재료가 먹혔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내년초. 환율이 급락해 수출전선도 얼어붙을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가 간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많지 않은 탓이다. 외환당국이 연말용으로 내놓은 아시아개발은행 관련 달러 매수세도 실은 내년용으로 잡혀 있던 재료였으나 환율 사정이 급박하게 돌아가자 미리 활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외환당국이 시장을 간접적으로나마 통제할 수 있는 재료는 바닥난 가운데 달러 공급은 여전히 넘칠 것으로 보인다. 지난 3일 133억달러까지 올랐던 거주자 외화예금이 125억달러로 줄었다는 사실은 기업들이 더이상의 환차손을 줄이기 위해 달러 매각에 나서고 있음을 반증한다. 수출물량이 몰리는 연말을 전후해 기업의 달러보유는 더욱 많아진다. 결국 외환시장은 달러 공급 초과, 간접 대응책 부재로 환율급락으로 이어질 가능성만 남게 된다.
정부는 내년에 돌아오는 국제통화기금(IMF) 차관 97억달러를 모두 상환하되 가급적 시장에서 매입해 시장불안을 최소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또 중앙은행의 직접 개입도 적극 검토키로 했다.
하지만 지난 97년 외환위기 때 직접 개입으로 인한 외환보유고 고갈이라는 쓰라린 경험을 안고 있는 중앙은행이 직접 나서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한은은 지난 9월 환율 급락할 때도 구두로만 개입의사를 흘렸을 뿐 시장에 직접 나타나지는 않았다.
결국 달러 공급우위 재료만이 현실적인 시장 영향력을 갖고 있는 가운데 내년에는 달러화 하락에도 불구하고 외화자금이 더 들어올 수도 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무디스사의 국가 신용등급 상향이 현실로 나타나면 외국인투자자들이 환율이 더 내려가기 전에 주식매입을 위해 대거 유입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경우 국내 금융·외환시장과 증시 불안요인도 더욱 가중될 것으로 우려된다.
금융연구원 최공필 연구위원은 『환율을 시장 흐름에 따라 움직이도록 놔 두는게 원칙이지만 원화절상 속도가 너무 빨라 그대로 방치할 경우 경기회복을 지연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라며 『중소기업을 포함한 실물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위해 적정선의 개입을 강구해야 할 시점』이라고 지적했다. 【권홍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