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 경기침체로 실업문제가 심각하다. 정부가 일자리 창출에 안간힘을 쓰고 있지만 사정은 좀체 좋아지지 않고 있다. 집값은 급등했는데 건설경기는 바닥이 어딘지 모를 정도다. 지방 건설업체들은 고사 직전이라며 아우성이다. 이런 때 인력난ㆍ자재파동을 거론하는 것은 하늘이 무너질까 걱정하는 것처럼 넋 나간 사람으로 취급될 것이다. 그게 정말 기우(杞憂)일까.
지난 80년대 말 분당 등 5대 신도시 건설은 당시 나라를 흔들었던 부동산 투기를 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지만 인력 및 자재난을 초래하는 등 경제에 큰 후유증을 남겼다.
균형개발과 전국의 공사장화
한꺼번에 공사가 벌어지면서 인건비는 2~3배 올랐다. 일손이 건설현장으로 몰려드는 바람에 공장에서는 사람을 못 구해 쩔쩔맸다. 자재난도 심각했다. 모래가 부족해 바닷모래를 쓰는 일이 벌어졌고 이는 훗날 성수대교 붕괴 때 안전문제로 불거지기도 했다. 인력과 자재를 빨아들이고 임금을 크게 올린 신도시는 고비용 경제구조를 불러온 계기가 됐다. 오죽했으면 신도시를 ‘경제의 블랙홀’로 불렀을까.
이제 곧 5대 신도시는 조족지혈(鳥足之血)일 정도의 초대형 공사들이 벌어진다. 우선 공공기관 이전을 보자. 175개 기관이 옮겨갈 곳에는 사옥과 질 좋은 교육ㆍ문화 시설 및 주택을 갖춘 혁신도시 10여개가 건설된다. 5대 신도시는 1,500만여평에 29만여가구, 수용인구 116만여명 규모였다. 혁신도시는 모두 1,300만여평 규모로 정부는 이전에 따른 인구이동 효과를 90만명으로 잡고 있다. 신도시 4분의3 크기다. 이적지(移跡地) 개발까지 합치면 규모는 훨씬 커진다. 그뿐만이 아니다. 판교ㆍ송파 등 서너개의 신도시, 행정중심복합도시, 경제자유구역, 기업도시, 혁신클러스트, 뉴타운, 민자유치 BTL 사업 등 거대 프로젝트들이 줄을 잇는다.
혁신도시는 내년에 착공해 오는 2012년 완료 예정이다. 행정도시 공사도 내년부터 시작된다. 행정수도는 처음 5년간 혁신도시 공사와 겹친다. 경제자유구역도 본격화되고 기업도시ㆍ신도시ㆍ뉴타운 등도 본격적인 공사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것들이 동시에 이뤄진다면 전국이 공사장으로 변하게 될 판이다. 인력난ㆍ자재파동을 쓸데없는 우려로 치부할 수만 없는 이유다.
경제가 얼마나 커졌는데 그때와 비교하느냐고 하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불과 2년 전에도 자재파동이 있지 않았는가. 철근 등 원자재 값은 천정부지로 뛰었고 일부 건설현장에서는 자재가 없어 공사가 중단되는 일이 벌어졌다. 맨홀 뚜껑, 동네 주민체육시설에서 철판 등 쇠붙이를 훔쳐가는 웃지 못할 사건까지 일어났다. 신도시 같은 대역사가 벌어진 것도, 건설경기가 활황인 것도 아니었다. 중국특수 때문이었다. 여전히 우리 원자재 수급사정은 그 정도로 취약한 것이다.
지역균형발전을 위한 대형 개발사업에 대해 정부는 불퇴전의 자세다. 차기정권이 누구라도 이것들을 뒤바꾸지 못할 것이라고 자신 있게 말한다. 그러니 지금 불황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건설업체와 관련 업계는 너무 걱정할 일이 아니다. 오히려 인력난과 자재난을 걱정해야 할 판이다.
인력·자재파동 걱정해야 할 판
문제는 그게 정부의 장담과 같이 착착 진행될 것이냐 하는 점이다. 정부의 능력, 특히 건설부동산 정책을 보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재건축을 비롯한 부동산대책, 판교 개발방향과 분양가, 생애 첫 대출제도, 발코니 확장 조치 등 그동안 내놓은 대책마다 곡절과 혼선 없이 시행된 것이 없기에 그렇다.
특히 부동산 대책에 대한 ‘성공한 3부작 드라마’ 따위의 자화자찬을 보면 정부가 뭘 잘못했는지조차 모르는 것 같다. 그래서 정책에 대한 신뢰는 더 멀어진다. 여기다 초대형 프로젝트에 소요되는 엄청난 재원의 조달방안도 명쾌하지 않다. 그렇다면 ‘경제 블랙홀’ 우려는 결국 기우인 셈인가. 그러나 그게 기우로 끝나면 건설업체의 비명과 경기침체가 계속될 것이라는 이야기니 이래저래 걱정일 수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