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기업 줄도산→펀드런 차단" 선제적 특단 조치

■ 채권안정기금 부활 왜?<br>99년 때보다 큰 규모 조성…우량 회사채등 매입 가능성<br>기금조성 핵심 한은 소극적, 당장 액션 취할지는 미지수



정부가 채권시장안정기금이라는 특단의 카드를 9년 만에 다시 빼든 것은 기업 자금난을 해소해 금융위기가 실물경제로 빠르게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한 선제적 조치다. 회사채 시장 마비로 자금난에 처한 기업들이 줄도산할 경우 투자자의 불안심리가 극대화, 펀드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판단 아래 사전에 회사채 등을 매입해 기업의 숨통을 터주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기금 조성의 핵심인 한국은행이 은행채 매입 당시와 마찬가지로 소극적이어서 당장 액션을 취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채안기금 카드 왜 꺼냈나=최근까지도 금융당국의 관심은 은행채와 양도성예금증서(CD) 등 단기 시장 경색이었다. 하지만 한은의 은행채 매입과 금융위원회의 은행권 유동성비율 완화 등으로 단기 시장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반면 회사채 쪽으로는 여전히 온기가 전해지지 않은 채 새로운 아킬레스건으로 자리하고 있다. 경기침체와 금융위기로 기업의 자금수요는 커졌지만 은행권의 대출기피와 회사채 발행난까지 겹쳐 자금사정은 최악이다. 중소 건설사는 물론 일부 대형 건설사까지 위험설이 흘러나오고 있으며 멀쩡한 기업까지 일시적인 자금난에 봉착해 흑자 도산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증폭되고 있다. 이 같은 일이 현실화할 경우 채권형펀드의 대규모 자금유출로 이어질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형국이다. 펀드런이 발생하면 자산운용사나 증권사는 보유 채권을 투매할 수밖에 없고 금리는 치솟는다. 이는 펀드의 자산가치 하락으로 이어져 또다시 환매를 부추기는 한편 가계와 중기의 금융부담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정부는 이 같은 최악의 시나리오를 가정하고 특단의 조치를 선제적으로 꺼내든 것이다. ◇채안기금 설립 및 운용은 어떻게=지난 1999년 대우채 사태 당시 채안기금은 은행 등 금융권이 갹출해 조성했다. 당시에는 펀드ㆍ주식시장 위기로 시중자금이 은행으로 몰려든 터라 은행이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은행권에 여유가 없다. 오히려 은행이 생사의 기로에 섰다. 결국 한은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 나온다. 한은이 기금마련에 동의할 경우 문제는 지원방식과 기금 규모, 매입대상 기준이다. 기금 출연은 한은법상 긴급시 민간에게 직접 대출해줄 수도 있고 은행권에 환매조건부채권(RP) 방식을 통해 지원해줄 수도 있다. 통안채 조기 상환을 통한 출자와 금융기관 대출 등도 가능하다. 핵심은 기금 규모다. 1999년 채안기금 규모가 30조원이었는데 당시 전체 채권시장이 465조원에서 현재 1,000조원으로, 회사채는 128조원에서 211조원으로 늘어난 점을 감안하면 이번에는 당시보다 더 큰 규모가 될 수도 있다. 조성 기금으로는 우량 회사채, 카드채, 투자적격 채권 등을 매입할 가능성이 높다. ◇한은 언제 나설까=한은은 채안기금 방안에 대해 이미 내부적으로는 상당히 깊은 수준까지 검토를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한은의 한 관계자는 “금융시장 상황이 악화될 것을 대비해 내부적으로 채안기금 조성 여부를 검토하고 있다”며 “하지만 금융위와 아직까지 협의하지는 않았다”고 말해 액션 가동까지는 시간이 남았음을 내비쳤다. 한은이 이처럼 소극적인 이유는 대우채 사태 당시와 지금은 상황이 다르고 시장 상황도 급박하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한은 관계자는 “당시 채권시장은 회사채가 중심이었고 핵심에는 대우채가 있었기 때문에 대우채 문제 해결이 시장의 사활을 좌우했다”며 “하지만 지금은 회사채 거래 실종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닌데다 비우량 기업들을 살리기 위해 기금을 조성한다는 게 원칙에도 맞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특히 그는 미국은 정부가 은행을 국유화할 만큼 금융시스템이 붕괴됐지만 우리의 경우 기금으로 시장을 떠받칠 정도로 비상상황은 아니라며 현 시점에서 채안기금 조성은 시기상조라는 견해를 피력했다. 하지만 은행채 매입 건의 경우 정부의 강력한 압박으로 한은이 결국 받아들였던 만큼 채안기금안 또한 한은이 끝내 수용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강해 한은의 행보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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