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규성 前 재경부 장관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수습능력"<br>'산업자본의 은행업 참여' 이젠 허용해야<br>출총제, 시대흐름 맞게 풀어주는게 좋아


[외환위기를 겪은 사람들] 이규성 前 재경부 장관 "위기는 올 수 있다… 문제는 수습능력"'산업자본의 은행업 참여' 이젠 허용해야출총제, 시대흐름 맞게 풀어주는게 좋아 대담:이용웅 경제부장 yyong@sed.co.kr 정리=김민열기자 mykim@sed.co.kr 이철균기자 fusioncj@sed.co.kr 사진=이호재 기자 관련기사 • 김용환 "DJ '換亂극복' 선언 왜 서둘렀는지…" • 김중수 "잠재성장률 저하 가볍게 봐선 안돼" • 최종욱 "제역할 못한 정부·은행·기업 '합작품'" • 유종근 "DJ불신에 美와 외채협상 제일 힘들어" • 이연수 "정부 '하이닉스 무조건 팔아라' 독려" • 정덕구 "대선 휘말려 신종 경제위기 올까 걱정" • 위성복 "기업 사정 모른채 구조조정 밀어붙여" • 손병두 "대우그룹 몰락, 정부도 일부 책임있다" • 김대송 "증권사 무분별 해외진출 리스크 크다" • 이용득 "관치금융이 환란 부른 결정적 요인" • 강봉균 "대우, 구조조정 서둘렀으면 해체 안돼" “위기는 언제든지 올 수 있다. 문제는 수습능력을 갖추었느냐에 있다.” “요즘 가계 발(發) 금융위기 등이 거론되고 있지만 위기가 올지 안 올 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오면 수습할 능력을 갖추고 있느냐에 있다. 물론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위기는 올 수 있다. 중소기업으로 인한 위기도 올 수 있다. 위험요소는 항상 있다. 다만 그런 위기에 대처할 능력이 있느냐.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가장 중요했던 순간인 98년 3월부터 1년 여 간 재정경제부 장관을 맡으면서 한국경제의 재건과 험난한 구조조정 과정을 지휘했던 이규성(사진ㆍ69) 코람코 자산신탁회장은 최근 경제상황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장관 재임 당시 진행됐던 빅딜 등 구조조정에 대해 그는 “요리책을 만들면서 요리를 해야 했다”며 그 만큼 하나하나가 어려웠다고 회고했다. 그래서인지 서투른 면도 있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5대 빅딜을 하면서)솔직히 어떻게 될지 당시는 몰랐다. 불확실성이 많았다. 물론 비판은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태해서 그렇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했다”고 말했다. 아울러 99년 은행법 개정이 뜻 대로(?) 되지 않은 대해서는 강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그는 “은행에 대한 산업자본의 규제를 풀자는 안에 대해 정치권, 시민단체, 언론 등이 엄청난 반대를 했다“며 “만약 (정부)안대로 됐다면 제대로 된 토종은행 한 두 개쯤은 있었을 것이다”며 은행법 개정 필요성이 아직도 유효함을 강조했다. -97년 외환위기에 대한 국가적 차원의 기록이 없다. 외환위기를 겪은 뒤 국가적 차원에서 백서를 만든 태국과는 비교되는데. ▦거기에 대해 할말은 없지만 한국에 기록의 문화가 빈약한 것은 확실한 것 같다. 외환위기는 경제에 있어 커다란 터닝포인트(전환점)이자 대사건이었다. 그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을 받았다.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어버린 실업자가 180만 명을 넘었다. 하루에도 몇 백 개씩 기업 쓰러졌다. 잘 나가던 기업 우등생이 갑자기 F학점을 받는 자조와 모멸감을 느꼈다. 정부차원에서 이에 대한 기록을 남겼어야 했는데 그렇게 못했다. 아쉬운 대목이다. -최근 원화 강세가 외환위기 당시를 연상시킨다는 말이 있다. ▦경상수지가 흑자를 유지하는 것은 반가운 일인데, 문제는 자본수지도 흑자라는 점에 있다. 말이 안되는 일이다. 그래서 원화 강세가 가속화되는 것이다. 금융기관 등이 해외로 진출하는 것을 꺼린다는 이야기인데. 금융기관이 동남아시아 같은 데 가서 장사를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진출도 하고. 동남아 등에 금융기관이 많이 진출하면 자연스럽게 국내 금융기관 본점 등이 또 그 중심이 된다. 괜찮은 동남아 금융기관 인수하고 협력하고 해서 기업들 정보도 얻고 하는 게 중요하다. 개발이 한 창인 중국 등에 가서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적극적으로 하고 그런 것을 해야지. 금융허브라는 게 대단한 게 아니다. 외국투자자들이 서울에 가니까 돈을 빌리기도 쉽고, 또 돈을 운용할 것도 많더라고 느낄 때 되는 것이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육성)한다고 되겠는가. 민간 금융기관들의 적극적인 활동이 중요하다. -또 다른 위기가 오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가계 발(發) 금융위기 등도 거론되고 있고. ▦위기가 올지 안 올 지의 문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위기가 오면 수습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물론 어느 정도 예견할 능력이 있는가가 중요하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위기는 올 수 있다. 가계부채 혹은 중소기업으로 인한 위기도 올 수는 있다. 다만 그런 위기 대처할 능력이 있느냐. 그것을 가지고 이야기를 해야 한다. 위기가 될 각종 요인을 잘 대처하고 분류하고, 또 외국인 이야기도 듣고 우리의 대처 능력이 있음을 설명하고, 안 되는 것은 협력하고 그러면 된다. 불이 안 나는 나라 있는가. 문제는 불을 얼마나 빨리, 제대로 끌 수 있느냐의 능력에 달려 있다 하겠다. -외환위기 때는 어땠다고 보는가. ▦ 97년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전에 여러 경제주체들과의 대화가 부족했다. 또 한국을 알리려는 노력도 없었다. 97년 외환위기 전에 IR(국가설명회)다운 IR이 과연 몇 번이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런 IR를 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정부도 홍콩 IMF총회 가서 설명한 것 이외에는 뉴욕이나 런던 혹은 S&P같은 신용평가 회사에 가서 한국경제를 설명했다는 이야기 못 들었다. -대마불사의 신화는 아직도 유효하다고 보는지. ▦대마불사의 신화는 외적성장을 중시하던 경제정책의 흐름 속에 나온 것이다. 문제는 있지만 성장을 이유로 보호해 왔다. 실제로 기업이 주요 사업에 대해 목표를 정해놓고 추진할 경우 금융기관과 정부는 보험자 역할을 했었다. 때문에 ‘주식회사 대한민국’에서는 대마불사가 가능했다. 은행불패도 이 같은 맥락이다. 그 신화는 97년을 계기로 어느 정도 깨졌다. 이제는 시장이 판단하고 결정하는 시스템이 어느 정도 갖춰졌다고 본다. -97년 외환위기 극복선언을 너무 빨리 했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 외환위기 뒤 기업의 지배구조 문제나 회계 등등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법제화 돼 있다. 하드웨어는 미국 등 선진국에 견줘도 뒤지지 않는다. 문제는 소프트웨어다. 외환위기 극복 선언을 하고 안하고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큰 문제는 아니다. 구조조정을 정부가 시켜서 하기 보다는 상시구조조정이 돼야 했다. 그런데 그렇지 못했다. -구조조정 프로그램이 97년 위기 뒤 처음 도입된 것인가. ▦그렇지 않다. 과거 박정희 정권시절에는 청와대에 외자관리관이 있었다. 외자(외국자본)을 들여와 기업 등의 사업을 하던 때라 그것의 관리가 상당히 중요했다. 외자를 이용한 기업이 부실해질 경우 정리하는 것이다. 당시 ‘’. 합판을 만들던 회사다. (부실기업정리의)시초로 봐도 될 것이다. 물론 97년 위기 뒤 본격적인 정부주도 구조조정이 진행됐다. 98년에 정부주도의 구조조정은 말그대로 ‘요리책 만들면서 요리’하는 것과 같았다. 워크아웃 프로그램 만들면서 워크아웃을 진행했다. -97년 이후 기업들 구조조정은 어땠나. ▦그룹 중 구조조정은 삼성이 가장 잘했다. 북경에 있는 건물도 팔고. 볼보에는 지게차 만드는 공장도 팔았다. 삼성자동차도 털어냈다. 삼성자동차는 스스로 빅딜하겠다고 했다. 대우전자와 삼성자동차에 대한 빅딜을 자율적으로 결정해 알려왔다. 부채비율도 상당부분 낮췄고 다른 재벌에 비해 문어발식 경영도 안 했다. 기술력도 탄탄했다. 특히 케시카우도 잘 갖췄다. -5대 빅딜이나 제일은행 매각 등의 인위적인 구조조정에 대한 비판도 있다. ▦결과를 보고 판단해서다. 솔직히 어떻게 될지 당시는 몰랐다. 물론 비판은 받아야 한다. 그러나 나태해서 그렇게 했다면 모르겠지만 최선을 다해 했다. 결과를 겸허하게 받아들일 필요도 있다. 다만 사후적으로 분석을 해서 이 다음에 그 같은 결과를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괜찮다. 미리 모든 것을 내다 볼 수 있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런 능력까지는 없었다. -구조조정이 잘 안됐다는 평가도 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를 유지하는 것이나 장하성펀드 같은 것이 등장하는 것도 다 이 때문 아닌가. ▦미국의 경우를 보자. 엔론 회계부정 사태 이후 (미국 정부와 감독당국이 회계부정을 방지하기 위해 엄격한 규제를 강요하는) 샤베인-옥슬리법(Sarbanes-Oxley Act)을 만들었다.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겠다는 뜻이겠지. 그런데 바로 그 때문에 금융시장의 중심이 런던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하지 않나. 과연 샤베인-옥슬리법 같은 수준의 규제를 우리도 지속해야 하는지 질문을 해야 할 때라고 본다. 미국도 부정적인 효과를 인식하고 내부에서도 논란이 많다. 국내 기업은 이미 글로벌스탠더드에 맞게 투명성을 갖추고 있다고 본다. 규제를 풀어주는 게 맞다. 공정위도 마찬가지다. -최근 론스타 사건을 통해 외환은행 헐값 매각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진출을 가로막고 있어 그런 일이 벌어진 게 아닌가. ▦99년에 산업자본이 4%이상 지분 취득이 제한된 은행법을 개정한다고 했을 때, 언론들 엄청나게 반대했다. 재벌들이 은행까지 소유할 경우 엄청난 경제집중은 물론 금융회사가 재벌들의 금고가 된다는 논리로 반대했다. 지금도 그때가 아쉽다. 당시 반대하지 않았다면 제대로 된 토종은행 나왔을 것이다. 우리은행 매각도 그 같은 제한 때문에 골치 아닌가. 은행법은 개정할 필요가 있다. 해법이 마땅치 않을 게다. 은행들의 지분 대부분은 외국인이 현재 갖고 있지 않느냐. 투명한 경영의 시스템은 상당히 갖춰져 있다. 시장에 의한 규율 시스템도 미국, 일본 못지 않은 게 한국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은행법 등의 규제를 풀어 누구나)투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죽지 않느냐. 반기업 정서도 너무 심하다. -외환은행 매각을 둘러싼 일련의 사태로 관료의 역할에 대한 관심이 다시 커졌다. ▦관료의 기본은 입법절차에 따라 법에 정해진대로 충실하게 따르면 된다. 또 재량권이 주어지면 최대한의 노력을 다해 하는 것이다. 론스타에 대한 외환은행 매각과 관련해서는 현재 재판에 계류 중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지는 않겠다. 다만 퇴계철학에 이런 구절이 있다는 점을 상기해주고 싶다. ‘대인춘풍 지기추상’(待人春風 持己秋霜). 즉 남을 대할 때는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하고, 자신을 대할 때는 가을 서릿발처럼 엄하게 하라는 말이다. 그게 경(敬)의 사상이다. 현재는 ‘대인추상 지기춘풍’(待人秋霜 持己春風)으로 바뀐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이규성 前 재경부 장관 약력 ▦39년 충남 논산 ▦대전고, 서울대 경제학과 ▦고등고시 12회(60년) ▦제네바 주재 재무관(73년) ▦대통령비서실 재경 비서관(76년) ▦재무부 차관보(81년) ▦전매청장(82년) ▦재무부장관(88년)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91년) ▦재경부장관(98년) ▦코람코자산신탁 회장(현) 입력시간 : 2007/01/17 1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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