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 이혼의 책임


"죽음이 갈라놓을 때까지 사랑하겠는가." 결혼식에서 하게 되는 혼인 서약이다. 그러나 첫 각오와 달리 '살다 보면' 이 맹세를 지키고 사는 것이 그다지 쉬운 일은 아닌가 보다. 한국의 조이혼율은 인구 1,000명당 2.3명을 기록(2011년 기준)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4개국 가운데 9위다. 아시아 회원국 중 일본을 제치고 1위에 해당하며 OECD 평균인 1.9명을 훨씬 넘어선다.


'돌싱남' '돌싱녀'라는 말이 크게 흠이 되지 않는 세상이지만 어느 사회든 혼인의 청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특히 우리 유교 전통사회에서는 '칠거지악(七去之惡)'에서 보듯 여성 일방의 책임으로 이혼 허용을 규정하면서도 같이 부모상을 치른 아내는 내쫓을 수 없다는 식의 '삼불거(三不去)'로 이혼 자체를 어렵게 했다. 1895년 갑오개혁 이후 근대 이혼제도가 도입되면서 상호주의로 바뀌었지만 기본적으로 배우자 부정행위 등의 책임을 규정하는 이른바 '이혼 유책주의'를 채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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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달리 혼인 파탄의 책임과 관계없이 이혼을 인정하는 것이 파탄주의다. 1907년 스위스가 민법에서 "혼인 관계의 지속이 심각한 파탄이 생긴 때"의 이혼을 인정한 후 속속 도입돼 이제 서구 사회에서는 거의 일반화돼 있는 법리이다. 기독교 교리상에는 이혼을 인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20세기 이후 여성 인권 운동이 확대되면서 신교국가들을 중심으로 확대됐다.

대법원은 15일 바람을 피운 남자가 청구한 이혼소송에 대해 청구 불가로 판결했다. 이 판결의 핵심은 동거나 부양·부정 등 혼인 의무를 위반하는 행위를 한 당사자는 이혼을 청구할 수 없다는 기존 판례를 유지한 데 있다. 아직은 이 판결을 지지하는 여론이 절대 다수다. 하지만 이번 판결에 대해 재판관 13명의 찬성과 반대가 7대6일 정도로 갈수록 양론이 팽팽해지고 있다. 최근 위헌 판결이 난 '간통죄'처럼 이혼 유책주의도 도도한 사회의 변화 속에 언제까지 유지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온종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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