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기말과 문학적 상상력이 만나면 혼란과 파국이 올 것인가 아니면 창조와 변혁이 초대될 것인가. 물론 해답은 없다. 그러나 예술가는 나름대로의 의무를 갖고 있다. 그것은 만남이란 소중하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이다. 특히 세기말이라는 기묘한 개념과 마주치는 예술 속의 상상력은 그것이 만약 문자가 아니라 영상일 경우 관객을 열린 공간 속으로 밀어넣는 추진력을 더욱 힘차게 얻어낼수 있다.이광모 감독의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10여년이라는 긴 세월 속에서 잉태된 작품이다. 세기말에 완성된 이 영화는 공교롭게도 한국전쟁이라는 역사적인 사건을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한민족이 20세기 최고의 비극적 상황에 내몰리고 있을 때, 우리의 부모 형제들은 어떤 경험을 했던가.
미군 장교와 사귀는 성민이 큰누나 영숙의 주선으로 성민의 아버지 최씨(안성기)가 미군부대에 일자리를 얻으면서 성민네 가족의 형편은 나아진다. 그러나 성민네 아래채방에 세들어 살고 있는 창희의 어머니 안성댁(배유정)은 의용군으로 끌려간채 소식이 없는 남편을 2년째 기다리며 어린 두 자녀와 함께 힘겹게 살아간다. 이를 보다 못한 최씨는 그녀에게 미군의 빨래를 해주는 일자리를 소개해주는데, 미군 속옷빨래를 모두 도둑맞은 안성댁은 미군과의 정사로 일을 처리한다.
아이들은 언제나 즐겁지만 전쟁은 그들에게도 상처를 준다. 우연히 성민과 창희는 안성댁과 미군 하사의 정사장면을 목격하게 되고, 얼마뒤 방아간에 원인모를 불이 일어나 양공주와 미군이 죽는 사건이 발생한다. 갑자기 사라진 창희, 그리고 휴전, 우연히 발견된 아이의 시체, 창희의 아버지가 돌아와 실종된 아들 창희를 찾아나서고, 최씨는 미군부대에서 쫓겨나는데….
지독히 아름다운 화면 속에서 전개되는 지독히 불행한 사건들.
화면은 언제나 사람들을 풍경 속에 묻어버리고 관객들은 주인공인 안성기의 얼굴도 제대로 확인할수 없다. 그들은 마치 기억 저편 속으로 사라져가듯이 자연 또는 인공의 풍경 속으로 파묻쳐가지만, 화면 곳곳에 날카로운 비수가 숨겨져 있음을 관객은 눈치챌수 있다. 상처가 더 이상 곪지않게 썩은 살을 도려내기 위한 비수이다.
때문에 영화 「아름다운 시절」은 우리시대의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으려는 모두의 노력에 부응하듯이 희망의 메시지를 존중한다. 그것은 불행에 대한 옹골진 자각이며 동시에 내일에 대한 주도면밀한 준비이다.
이 영화는 칸느 국제영화제에서 「황금카메라상」 최종 결선에 진출한바 있고, 최근에는 도쿄영화제에서 경쟁부문 금상을 수상했다. 21일 서울 단성사등 전국 50여개 극장에서 개봉한다. 【이용웅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