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2일 정부는 디지털 TVㆍ방송, 디스플레이, 지능형 로봇 등 10대 차세대 성장동력산업을 지정하고 이들에 대하여는 출자총액제한의 예외 허용, 토지사용 규제제한 완화 등의 특별지원을 약속했다.
작년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투자가 1,800여건에 달하고, 2001년 이후 해마다 우리나라 제조업의 해외투자금액이 외국기업의 대한투자 금액을 웃돌고 있다. 이같이 제조업의 공동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고 앞으로 5년, 10년 후 무엇을 해야 할지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현실에서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이끌 유망산업을 확정, 발표한 것은 의의 있는 일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이번에 선정된 디지털TV나 디스플레이는 물론 차세대 반도체, 지능형 로봇, 미래형 자동차 등은 이미 오랫동안 기업들이 기술개발 노력을 기울여 온 분야이다. 특히 이들 10대 산업들은 기존 산업에 최근 눈부신 발전을 보이고 있는 정보통신기술을 접목시킨 것일뿐 완전히 새로운 개념의 첨단산업이 아니라는 점은 정부도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국내 S사의 경우 이미 대형 디지털TV의 소재인 PDP와 LCD시장에서 세계 1, 2위를 다투고 있을뿐만 아니라 차세대 반도체 분야에서도 매년 1조원 가량을 연구개발에 투자해 선진국 추격을 가속화하고 있는 등 이미 가시적인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같은 현실을 고려할 때 최첨단 정보통신기술을 최대한 활용해 기존 산업의 IT화를 촉진시키는 것이 우리 산업구조의 고도화를 이룰 수 있는 보다 현실적이고 실효성있는 방안이다.
선진국의 경우를 보더라도 기존 산업이 아직까지 강력한 성장엔진으로 작용하고 있다. IT 종주국이라는 미국도 기존 산업의 비중이 50%이상을 차지한다는 점은 많은 것을 생각케 한다. 기존 산업에 IT를 접목시켜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이 무한하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정부가 특정 산업을 우선 육성업종으로 지정하여 이 분야에 자원을 집중 배분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이 과연 지금 우리경제의 규모나 현실에 맞는 정책인지에 대해 심도있는 검토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어떤 업종을 선택할지는 시장의 주체인 기업이 판단해야 할 일이므로 정부는 업종별 접근보다는 모든 산업의 IT화를 통해 고부가가치화를 추구하고 이를 위한 기술개발 지원과 인력양성 계획을 세워 추진하는 것이 미래산업 육성을 위한 바람직한 역할이라고 본다.
만일 아직도 고용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는 전통산업이 정부가 향후 역량을 집중키로 한 10대 산업이 아니라는 이유로 사양산업이나 쇠퇴산업으로 분류되어 각종 정부 지원으로부터 제외된다면 이는 우리 경제에 크나큰 손실이 아닐 수 없다. 인간이 의식주를 영위하는 한 사양산업이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사양산업의 대명사로 인식되고 있는 합판, 의류, 신발 등이 일본, 이탈리아와 같은 선진국에서는 디자인 혁신과 첨단소재 접목 등을 통해 고부가가치의 최고급 브랜드로 거듭나고 있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좋은 타산지석이 되고 있다.
마지막으로 이번 방안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한 고려가 미흡하다는 사실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10대 성장산업과 같은 첨단산업의 육성과 정보화를 위해서는 외국과의 합작이나 외국기업의 투자가 필수적이다. 그러나 이번 발표에서 외국 투자자들을 위한 영문자료가 제대로 준비되지 않았다는 사실은 정부의 의지를 반감시키는 원인이 될 수 있다.
자칫 그동안 우리 정부가 심혈을 기울여온 외자유치 노력이 외국투자자들에게는 공허한 메아리로 들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우려만은 아닐 것이다.
세계 각국은 지금 무한경쟁의 경제 전쟁을 치르고 있다. 여기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새로운 산업의 발굴도 중요하지만 보다 시급한 것은 먼저 우리 경제의 근간인 기존 산업의 고도화를 통해 미래의 성장잠재력을 확충하는 일이라는 점을 지적하면서, 차제에 정부의 산업에 대한 각종 규제가 규제원칙, 지원 예외인 포지티브 시스템에서 지원원칙, 규제 예외인 네거티브 시스템으로 전환되기를 바란다.
뿌리깊은 나무가 풍성한 열매를 맺듯 기존 산업의 튼튼한 경쟁력의 바탕 위에 새로운 성장엔진을 찾아야만 우리가 국민소득 2만달러 시대를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김효성(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