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21세기 자본' 저자 피케티 교수, "2030세대, 불평등에 좌절 말고 '뉴 코리아' 새 원칙 만들어가야"

■ 한국 청년에게 메시지

'선성장 후분배' 같은 기성세대 틀 벗어나 자본주의 질서 재창조

상속세 세율 등 논의해 양극화 돌파구 마련을

방한한 토마 피케티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지난 20일 연세대 백양콘서트홀에서 대학생과 일반 시민 800여명을 대상으로 강연을 하고 있다. 피케티 교수는 이날 강연에 20∼30대 청년들이 다수 참석한 점을 감안해 청년들에게 메시지를 던져주는 데 주안점을 뒀다. /사진제공=글항아리

"불평등이 심해지고 있는 상황에서는 성장 후 분배론과 같이 기성세대가 정한 틀에 얽매이지 말고 민주적 토론 통해 새로운 자본주의의 원칙을 만들어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21세기 자본'이라는 저서를 통해 세계 독자들에게 '소득 불평등'이라는 화두를 던져 주목을 받고 있는 토마 피케티(43·사진) 프랑스 파리경제대 교수가 양극화 속에 고통 받고 있는 한국의 20~30대 청년들에게 좌절 대신 긍정을 주문하며 '새로운 한국(New Korea)' 건설이라는 비전을 제시했다.


지난 20일 연세대에서 청년들을 대상으로 실시된 강연이 끝난 뒤 서울경제신문 취재진이 양극화 시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전할 메시지를 묻자 피케티 교수는 "청년들 스스로 '새로운 한국'을 만들어가야 한다(Construct New Korea, New World for the future)"고 강조했다. 그는 자신이 제시한 '자본을 가진 사람이 더 잘살게 된다'는 화두가 청년들을 좌절하거나 분개하게 만들기를 원하지 않았다. 대신에 그는 "고성장 시대에 기성세대가 정해놓은 논의 틀에 머무르지 말고 양극화를 줄이면서도 지속성장을 할 수 있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원칙들을 토론을 통해 재창조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피케티 교수는 청년들이 별로 문제시하지 않는 능력 중심주의가 팽배할 경우 나타날 수 있는 폐해에 대해서도 경고했다. 능력 중심주의는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필요한 원칙이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은 없는지 곰곰이 되새겨봐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노동소득을 가진 사람보다는 자본소득을 가진 사람에게 지나친 쏠림이 발생할 경우 세습 자본주의로 흘러가게 할 위험성이 있다"며 "기업 임원에게 돌아가는 높은 보수가 노동에 따라 분배되는 것인지 의심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 중국에서 최근 재산세에 대한 논의가 시작되고 있는 것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상속세 세율 등 논의를 통해 양극화 문제에 대한 돌파구를 찾을 수 있다고 했다.


이날 연세대 국가관리연구원과 출판사 글항아리가 주최한 강연은 한 시간 전부터 800여명의 청중으로 가득 찼다. 일부 시민들은 당일에 강연이 열린다는 사실을 알고 혹시나 남는 자리가 생길까 한 시간 넘게 기다리기도 했다. 강연 시작 직전까지 한국어판 출간 전에 구입한 원서의 끝 부분을 읽는 풍경도 눈에 띄었다. '피케티 열풍으로 책은 많이 팔렸지만 정작 다 읽은 사람은 없다'는 말을 무색하게 하는 열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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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강연과 달리 30대 직장인의 참여 열기도 대학생 못지않았다. 박승규(31)씨는 "'개천에서 용 난다'는 말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되면서 대학 때까지 배워온 복지나 삶의 질 관련 이론과 현실 사이에 괴리를 많이 느낀다"며 "정작 이런 이야기를 꺼내기도 전에 '네 의지 부족이야'라고 무시해버리는데 피케티처럼 우리가 처한 현실을 솔직하게 말해준 건 처음인 것 같다"고 했다.

이날 강연에서 학생들은 젊은 경제학자에게 사회 현상에 대한 불만도 털어놓았다. 한 여학생은 "건강한 자본주의를 실현하려면 제도가 필요한데 이미 민주적 절차가 자본의 영향을 받는 상황이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조언을 구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과거에는 불합리가 시위·세계대전 등 충격적인 사건들을 거치면서 해결이 되고는 했지만 지금은 아니다"라며 "계속해서 토론 통해서 싸워서 민주적 절차를 쟁취해야 한다"고 답했다.

이날은 '21세기 자본'에서 나온 내용을 토대로 한 강연으로 진행됐지만 경제학 강의에서 나오지 않는 개인적인 질문들도 나왔다. 학생들은 피케티 교수가 겪었던 고비와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는 가치도 궁금해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예상하지 못해 당황해 하면서도 즐겁게 답해 멘토와의 토크 콘서트 현장을 방불케 했다.

이러한 피케티 열풍에 대해 연세대 국제학대학원 교수는 "사회에서 문제를 느끼는데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이를 해결해주지 못하니까 이 문제를 설명해줄 수 있는 사람을 찾는데 그게 마침 피케티였을 것"이라며 "지난 2012년도 마이클 샌델이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주제를 던져 열풍을 일으켰지만 추상적인 담론을 다뤘다면 피케티는 소득 불평등이라는 아주 현실적인 문제를 다뤄서 그 울림이 훨씬 깊고 오래갈 것"이라고 했다. 덧붙여 "샌델 때처럼 일회적인 지적유희로 끝나지 않고 지속적으로 움직임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강연에 참석한 전모(29)씨는 "그동안 불평등 문제가 그저 책에서나 나오는 이슈로만 알았는데 사회로 나와 취업과 결혼, 전셋집 얻기처럼 현실적인 벽에 부딪히다 보니 나 자신의 문제로 실감할 수 있었다"며 "피케티 교수가 한국 사회에 맞는 답변은 제시하지 못했지만 '나부터 어떻게 변해야 할까'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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