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5월 11일] 과소비에 물드는 아이들

얼마 전 한 아웃도어 업체 관계자에게 서울 강남 일대 초등학교에서 노스페이스 점퍼가 선풍적 인기를 끌었다는 얘기를 듣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가격이 한 벌당 20만~40만원에 달하는 고가임에도 불구하고 한 반에서 절반 넘는 아이들이 샀을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고 한다. 소위 끼리끼리 뭉치는 치기 어린 동류의식이 노스페이스라는 브랜드를 입었느냐 그렇지 않느냐로 갈렸다는 것. 이제 겨우 10세 전후 아이들 세계의 일이라고 웃어 넘기기에는 뒷맛이 영 개운치 않았다. 이런 유의 현상은 유아복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이 시장은 저출산 기조에도 아랑곳없이 호황을 구가하고 있다. 이유인즉 부모들이 아이에게 쏟아붓는 엄청난 물량 공세 덕분에 불황이 없다는 것. 이 때문인지 최근 리바이스 키즈, 블루독 등 유명 아동복 브랜드들은 생후 개월 수별로 세분화된 프리미엄급 베이비 라인을 속속 내놓고 있다. 사석에서 유아복 업계 관계자들을 만나보면 ‘아기 옷으로 자신의 부를 과시하려는 어른들의 허세 섞인 소비 습관이 기업 입장에서는 금맥과도 같다’는 뉘앙스의 말을 공공연히 내뱉는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저출산 속 유아복 시장의 호황’이라는 아이러니한 현상은 기업들이 엇나간 사랑에서 비롯된 어른들의 소비 심리를 간파하고 잘 활용한 결과다. 이런 얘기를 꺼내는 것은 아이들의 일상이 상업적 메시지에 지나치게 노출돼 있다는 경각심 때문이다. TV를 켜면 10대들의 우상인 아이돌 그룹 2NE1이 11개월 무이자 할부 서비스(온라인 쇼핑몰 11번가)를 광고하고 이제 스무 살이 될까 말까 한 앳된 소녀들은 ‘신상춤(신제품을 가리키는 춤ㆍ옥션)’을 추고 있다. 이런 소비를 조장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아직 세상에 대한 인식이 여물지 못한 아이들은 쇼핑 중독자로, 또 일부는 가난에 상처받으며 커간다. 요즘 과소비를 근절하자는 캠페인이 많다. 가계 부채가 국가 경제의 큰 짐이 되고 있음을 떠올리면 당연한 것이지만 우리의 미래 세대는 이미 과소비에 물들어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어른들의 각성과 책임 있는 역할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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