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한가한 한은총재/정경부 이세정 기자(기자의 눈)

요즘 만나는 사람마다 한국경제가 어떻게 돼가느냐고 묻는게 인사말이다.기아그룹 부도유예협약 적용과 S, T 등 재벌그룹의 부도설로 한국경제 위기론이 팽배해있기 때문이다. 금융시장 안정을 책임지고 있는 한국은행 실무자들은 여기에 한국은행법 개정안까지 당장 현안으로 대두돼 눈코 뜰새없이 바쁜 실정이다. 그러나 서울 소공동에 우뚝 솟아있는 한국은행 8층의 이경식 총재실은 최근 일주일동안 비어 있었다. 이총재는 지난 22일부터 중국에서 열리는 한·중·일 3국 중앙은행 총재회의와 동아시아·태평양 중앙은행 총재회의(EMEAP)에 참석하고 26일 귀국했다. 이총재는 또 귀국하자마자 제주에서 열리는 「21세기 경영인클럽」주최 제주포럼을 주관하느라 곧바로 제주에 내려갔고 29일 하오에야 돌아올 예정이다. 한은은 이총재의 부재로 아직까지 제일은행에 대한 특융 지원여부 등 금융시장 안정이라는 현안에 대해서도 입장정리를 못하고 실무자들 의견만 다양하게 쏟아내고 있는 실정이다. 한국은행 비서실은 이총재의 중국방문이 기아사태 이전부터 예정되어 있었던데다 중국의 주용기 부총리 등을 면담하기로 되어있어 미룰 수 없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총재의 제주행에 대해서는 비서실측도 이렇다할 핑계를 찾지 못하는 모습이다. 21세기 경영인클럽은 이총재가 만들어 회장직을 맡고 있는 기업가들의 모임이다. 물론 일부 금융인들도 포함되어 있지만 기본적으로 실물 기업가들을 위한 단체이다. 21세기 경영인클럽의 이같은 성격때문에 이총재가 한은총재로 부임한후에도 회장직을 유지하고 있는데 대해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이 많았다. 이총재가 한은총재직을 너무 한가한 자리로 여기고 있지않느냐는 우려였다. 그런데도 이총재는 한국경제 위기론이 팽배하고 있는 상황에서 21세기 경영인클럽이 주최하는 제주포럼을 처음부터 끝까지 주재하는 여유(?)를 보였다. 이 때문에 한은과 은행감독원의 임원들이 급히 제주로 내려가 현지에서 업무를 보고하면서 처리하고 있다. 이같은 이총재의 한가한 모습에 한은 간부들조차 할 말이 없다는 표정이다. 일주일째 텅빈 총재실이 한은 직원들의 이총재 퇴진운동을 단순히 한국은행법 개정안과 관련된 이총재의 소신탓만은 아닌 것처럼 느끼게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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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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