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중기인을 슬프게 하는 것들(여의도 칼럼)

최근 중소철강업체를 경영하는 K씨로부터 전해들은 공장설립에 따른 체험담은 무척이나 충격적이었다.그는 10년간 섬유업에서 기반을 닦았지만 얼마전 오랫동안 꿈꿔오던 철강제조업으로 과감한 업종전환을 시도했다. 1만여평의 부지를 마련해 공장 설립에 착수한 것이 지난해 2월. 서류를 꾸미고 허가를 기다리다보니 점점 백년하청이란 생각이 들기만 했다. 도저히 안되겠다싶어 그는 정도를 벗어나 급행료니 사례비니 하는 명목의 부패사슬을 엮어 온갖 편법과 변칙을 동원한 비상작전을 썼다. 그 바람에 빨라도 1년은 걸린다는 공장 설립을 단 두달만에「해치웠다」고 했다. 아마도 최단시일의 기록적인 초고속 허가취득이었을 것이란 넋두리가 덧붙여졌다. 이리저리 뛰어다닌 거리만도 수천리. 수천장의 서류에 3백개가 넘는 각 기관 인허권자의 결재도장이 찍힌 허가서를 받아낸 뒤의 심정은 그야말로 허탈과 참담함뿐이었다고 한다. 중소기업인의 기업의욕을 되살리는 길, 부패를 없애는 길은 규제 완화가 아닌 규제 철폐라는 것이 K씨의 결론이다. 공장설립에 성공한 K씨는 그뒤 신규설비자금, 운전자금 융자를 위해 S은행을 찾았다. 이번만은 정도경영으로 정면돌파하리라 굳게 다짐했다. 여신 규정에 어긋남이 없고 사업 타당성도 확실했다. 아직도 제조업을 하느냐고 비웃는 항간의 기업풍토에서 60억원이란 자기자산을 몽땅 털어 공장을 세웠으니 도와달라고 했다. 은행문이 닳도록 드나들며 브리핑에 호소를 거듭하기 수십차례. 4개월만에 융자를 받았다. 어렵사리 융자받은 것만해도 고맙지만 2개월만의 공장 설립에 비해 돈빌리는데 걸린 4개월은 너무 길고 힘들었다고 씁쓸해 했다. 대형부실기업 한보에 융자된 5조원이면 적어도 5천∼1만개의 중소기업은 살릴 수 있을텐데, 해도 너무 했다는 K씨의 푸념이다. 그리고 계속되는 K씨의 실토. 그의 공장엔 지금 7명의 인도네시아 산업연수생이 있다. 솔직히 그들 7명 때문에 공장일이 잘 돌아가고 있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 근로자들보다 열심이고 근로의욕에 불타고 있다. 우리 근로자들은 대체로 일을 제대로 하지 않는다. 근로윤리가 메말라 있고 신나게 일하는 분위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망해보고 다시 뛰면 늦다. 망하기전에 더욱 신나게 뛰도록 해달라는게 바로 K씨의 소망이다.<서건일 중기연 초빙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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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건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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