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문제와 경제논리/조하현 연세대 교수(기고)

불황국면이 계속되고 있는 한국경제의 올해 상반기 실질경제성장률은 5.9%(GDP기준), 4.5%(GNP기준)로서 예년에 비해 하락한 수준이다. 더욱이 교역조건 변화에 의한 구매력 변화를 반영시킨 성장률, 즉 구매력GNP(Command GNP)를 기준으로 할 때 올해 상반기 성장률은 0.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1996년의 경우에도 실질경제성장률은 7.1%(GDP기준)였지만 구매력GNP를 기준으로 하면 3.2%에 불과했다.이러한 지표들은 고비용·저효율 구조하에서 경기불황기를 맞이한 우리 경제의 어려움, 특히 실질적으로 삶의 수준이 저하되었다는 사실을 잘 반영해 주고 있다. 자원이 부족한 소규모 개방경제하의 개발도상국 입장으로서 실질적인 경제성장률이 하락하는 원인은 수요측면이 아닌 공급측면에서 찾아야한다. 또한 한국경제의 공급구조가 대기업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현재의 불황이 장기화되고 있는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대기업 정책을 면밀히 재검토할 필요가 있다.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하에서 다품종 소량생산체제로 변모하고 있는 가운데 동남아, 중국 등의 경쟁국가는 저임금 노동력을 이용하여 국제시장에서 나름대로의 가격경쟁력을 확대하고 있고 미국 등 선진국은 높은 생산성과 기술력으로 또한 나름대로의 지위를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국제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은 물론 기술력 부족으로 전체적인 국제경쟁력을 상실한 한국의 많은 대기업들은 그동안 내수시장을 개척하는 등 나름대로 자구책을 모색해왔는데 이는 부존자원이 부족한 우리 경제에 국제수지 악화라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그나마 내수시장개척 등을 통해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일부 대기업과는 달리 최근 한보에 이어 많은 대기업들은 부도가 나거나 부도의 위기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다. 30대 대기업집단의 자기자본비율이 평균 20%에 불과하고 부채비율이 평균 3백90%에 이르는 대기업의 현실이 한국경제의 취약한 구조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비용상승을 기술투자로 상쇄하려는 노력을 등한시하고 외부자금 차입과 정부의 특혜를 통한 지나친 외형성장에 치중했던 대기업들은 대내적으로 과다한 자금수요를 초래, 불필요한 이자율 상승을 야기시켰고 대외적으로는 국제경쟁력을 충분히 높이지 못해 현재의 위기를 자초하였던 것이다. 현재의 장기불황 원인이 된 대기업의 국제경쟁력 상실과 모험주의적인 기업확장 및 부실화의 배경에는 「원칙」없는 정부의 대기업정책이 있었다. 관치금융 등으로 금융기관의 자생력은 마비되었고 정경유착의 관행과 더불어 대기업은 망하지 않는다는 분위기가 팽배하였다. 비정상적인 금융환경과 대기업정책은 자금의 왜곡된 흐름을 낳아 과잉·중복투자를 야기시켰고 이는 궁극적으로 자본수익률을 저하시켰던 것이다. 최근의 경제팀은 시장원리를 강조하고 대기업의 부실화 방지와 정경유착 근절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국제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정부의 이러한 「원칙」적인 태도는 정부의 단기적인 시장개입을 촉구하려는 듯한 언론의 맹목적인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고무적이다. 그러나 애초에 정경유착과 대기업의 부실화는 사후 도산방지를 포함한 정부의 잘못된 대기업정책이 가져온 부작용의 일부라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의 미래가 소수의 대기업에 달려있다면 단순히 시장원리를 강조하는 정부가 출현한다고 하여 국제경쟁력이 강화되거나 시장경제의 장점이 구현될 리 만무하다. 물론 그러한 상황하에서 정경유착의 관행이나 금융기관의 부실이 극복되기도 어렵다. 결론적으로 정부는 사후도산 방지 등을 포함한 대기업중심 정책을 탈피하고 중소기업과 대기업간의 실질적 경쟁과 협력이 가능한 풍토를 확충할 수 있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모두가 국제경쟁력의 원천이 되어야 하며 기술력높은 중소기업이야말로 변화하는 국제환경에 기동성있게 대응할 수 있다. 따라서 정부는 기초기술과 같은 공공재가 원활히 공급되도록 산학간의 연계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중소기업이 창의성 있는 신규 기술을 개발, 상품화할 수 있도록 자금과 인력지원의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경제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때 혜택을 얻는 다수의 국민은 비조직적인 반면, 당장의 구조조정기에 상대적으로 불리한 위치에 있게되는 소수의 대기업은 조직적이다. 또한 대기업의 운명은 고용과 생산, 수출 등의 여러 가지 측면에서 국민경제의 많은 부분과 관련되어 있다. 이러한 이해관계로 인해 이상에서 언급한 「경제논리」와 그것의 시행에 수반되는 단기적인 고통은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렵다는 문제점이 있다. 오히려 우리 경제는 정치논리, 혹은 경제논리를 가장한 정치논리에 의해 그전보다 오히려 바람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흐를 가능성이 있다. 결국 정부는 장기적인 비전을 제시하고 그 비전하에서 경제논리에 입각한 「원칙」을 견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한 이러한 원칙을 수행함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들에게 「신뢰」를 주는 것이라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신뢰」를 바탕으로 하여 「경제논리」에 입각한 경제정책을 수행하는 것만이 기업과 금융기관의 장기적인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경쟁력을 강화시킬 뿐 아니라 국민경제 전체의 구성원으로부터 동의와 지지를 얻는 유일한 방법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약력 ▲연세대 경제학과 ▲미 시카고대 경제학박사 ▲연세대 통일문제연구소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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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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