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경기불황이 장기화되면서 국내 주요기업들에서 전세계 시장을 무대로 누비는 영업맨들이 부활하고 있다. 장기불황과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장 감각이 뛰어나고 신시장을 개척할 수 있는 세일즈 전문가들의 활약이 더욱 중요해졌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18일 업계에 따르면 LG전자는 최근 조직개편을 통해 기존 한국마케팅본부를 한국영업본부로 개편했다. 또 각 제품 및 사업별로 운영되던 해외 영업조직을 하나로 통합해 사업본부장 직속으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각 사업부별 마케팅담당도 해외영업담당으로 새롭게 명칭이 바뀌었다.
아울러 LG전자는 기존 글로벌마케팅 부문(GMO)을 글로벌영업마케팅 부문(GSMO)으로 바꾸고 해외영업에 대한 책임과 권한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이로써 LG전자 내 판매와 관련된 모든 조직의 이름에는 '영업'이라는 단어가 빠지지 않고 들어가게 됐다.
이에 대해 LG 관계자는 "영업 관련 조직에 대한 역할과 책임을 분명히 함으로써 영업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일깨우기 위한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임원인사를 마친 삼성과 LG의 공통적인 인사 키워드 중 하나도 영업마케팅 인력들의 대거 중용이다. 삼성그룹은 지난 5일 발표한 임원인사를 통해 전체 승진자 475명 가운데 85명을 정해진 승진연한을 채우지 않아도 조기에 승진시키는 발탁 승진자들로 채웠다.
삼성의 이번 발탁 승진 가운데 가장 눈에 띄는 분야 중 하나는 바로 영업마케팅 부문이다. 영업마케팅 부문은 글로벌 영업의 최일선에서 해외 시장 공략의 첨병 역할을 맡아 실적달성을 이끈 공을 인정받아 역대 가장 많은 24명의 발탁 승진자를 배출하는 데 성공했다. 이는 2년 전의 발탁 승진 12명과 비교해서도 무려 두 배나 늘어난 숫자다.
올해 전체 임원 승진자들의 면면을 살펴봐도 그 어느 때보다 영업마케팅 전문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부사장 승진명단에 이름을 올린 박광기 삼성전자 부사장은 중동아프리카 총괄과 동남아총괄 등을 맡아 신흥시장 개척의 선봉에 선 인물로 해외영업 분야에서 잔뼈가 굵다. 박 부사장은 11일 보직인사를 통해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의 영상전략마케팅팀장이라는 중책을 새로 맡게 됐다.
승진 연한보다 1년 빨리 부사장 타이틀을 거머쥔 이진중 부사장은 입사 이후 국내 영업소를 시작으로 중국 내 판매법인을 두루 거친 대표적인 영업통이다. 그는 중국 내 프리미엄 스마트폰 판매 확대를 통해 시장점유율 1위 달성에 기여한 공로에 힘입어 조기 승진했다. 이 밖에 삼성전자 최초의 여성 주재원 출신인 연경희 부장도 뉴질랜드지점의 매출성장을 이끈 성과를 높게 평가 받아 1년 빨리 상무를 달았다.
지난달 말 임원인사를 단행한 LG그룹도 해외 시장을 무대로 종횡무진 누비는 글로벌 영업마케팅 인력들을 대거 중용했다. LG그룹은 올해 영업마케팅 분야에서만 지난해(19명)보다 늘어난 23명의 승진자를 배출했다. 특히 LG전자는 올해 임원 승진자(44명)의 30%에 달하는 13명을 해외법인장과 영업마케팅 인력으로 채웠다.
캐나다와 호주법인장 등을 역임하며 풍부한 해외사업 경험을 토대로 가정용 에어컨사업에서 남다른 성과를 낸 조주완 LG전자 상무는 이번 인사를 통해 전무로 한 단계 올라서며 미국법인장으로 자리를 옮겼다. 또 2009년 이후 5년 만에 탄생한 여성임원의 주인공이 된 김영은 부장은 1993년 LG전자 입사 이래 15년 넘게 미국·유럽 등 선진시장을 직접 발로 뛰어온 글로벌 세일즈 전문가다. 새 출범하는 GSMO의 부문장으로 선임된 박석원 부사장 역시 미주법인과 캐나다법인 등을 거쳐 바로 직전까지 LG전자 북미 지역 대표 겸 미국법인장을 맡아온 해외 시장 전문가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그동안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1위 제품을 만들기 위해 연구개발(R&D)과 제조·생산에 많은 중점을 기울여왔다면 최근에는 불황이 장기화되면서 무엇보다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만들 수 있는 영업 및 판매의 중요성이 더욱 높아지는 추세"라고 분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