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책] 정치·종교·문화… 모든 것을 의심하라

■논쟁<br>크리스토퍼 히친스 지음, 알마 펴냄<br>언론 기고문 69편 모아 여자는 왜 재미 없는가 등 사소한 것까지 칼날 비판

미국 앨라배마주 샘포드대학에서 열린 '신은 위대한가' 논쟁에 참여한 크리스토퍼 히친스(오른쪽). /사진제공=알마(저작권자 stepher)


'0'이라는 숫자가 사실은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정치적인 입장에서의 '중도'라는 것도 마찬가지다. '0'은 계산을 편하게 하기 위해, 그리고 '중도'는 본인의 주장을 좀 더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표현 '도구'일 뿐이다. 유교철학의 사서삼경 중 한 권 제목이기도 한 '중용'의 개념도 비슷한 얘기다. 그런 것이 있다는 가정 하에 계산하고, 입장을 확인하고, 또 그래야 한다는 것을 깨닫기 위해 노력하자는 얘기다.

저자 크리스토퍼 히친스는 엄밀히 말해 중도보다는 좌파였고, 어찌 보면 전향한 우파다. 그는 과거 베트남 전쟁과 칠레 피노체트 정권 지원 등 전쟁과 정치 공작의 책임을 물어 헨리 키신저 전 미국 국무장관을 전쟁범죄자로 고발하는 책을 낸 바 있다. 좌파 언론인 영국 '뉴 스테이츠먼'과 미국 '더 네이션' '배니티 페어' 등에 주로 기고했고, 가톨릭 교회를 비평한 것도 유명하다.

하지만 여러 언론 잡지ㆍ신문에 기고됐던 69편의 길고 짧은 이 책의 글에서는 좌우 구별이 없다. 제퍼슨과 존 F. 케네디가 존경받을 만한 인물인지, 14세 청소년을 사형시켜도 되는지, 심지어는 여자들이 왜 재미없는지 등등 사소한 것까지 새로운 시각에서 다시 바라본다. 나아가 미국은 물론 해외의 정치와 종교, 문학과 관습 등 모든 것에 대한 비판과 의심을 통해, 작가는 인간의 권리가 정치ㆍ경제 논리로 침해 받고 있지 않은가 의심한다.


몸으로도 확인한다. 미국이 테러리스트에 대한 워터보딩(물고문)을 허용하려 할 때, 실제 고문전문가를 만나 직접 경험한다. 이슬람 지역에서의 선교활동을 논할 때, 실제 파병 장교들과 토론하고 현지에 가서 주민들과 생활했다. 베트남에서는 에이전트 오렌지(고엽제) 피해자들을 만나 직접 현실을 확인했다.

관련기사



그의 무기는 하나다. 수사로서가 아닌, 진정한 의미에서의 '민주주의적 가치'다. 이를테면 볼테르가 말한 "내가 당신의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당신의 말할 권리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죽을 수 있다"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좌우를 떠나 민주주의적인 원칙에 대해 이 정도는 말할 수 있어야 스스로를 민주주의자라고 할 수 있지 않냐는 얘기다.

이 책에는 북한에 관한 글도 두 편 실려 있다. 북한이 강제수용소를 운용해 사람들을 억압하는 노예국가로, 조지오웰이 '1984년'에 그린 디스토피아보다도 못하다고 강조한다. 나아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탈북 행렬에 대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들이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영양실조로 북한 주민들의 평균 신장이 남한보다 평균 15㎝ 작고, 다른 인종과 외국인에 대한 혐오증이 주입된 '난쟁이 인종차별주의자들의 나라'라고 못박고 있다.

지난 2008년 '신은 위대하지 않다'는 책으로 국내에 널리 알려진 저자는 세계적인 정치학자 겸 저널리스트다. 지난 2005년에는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조사한 '100대 공적 지식인' 설문조사에서 5위를 기록했다. 당시 1위는 세계적 석학이자 언어학자인 노엄 촘스키, 2위 '장미의 이름'의 움베르토 에코, 3위 '이기적 유전자'의 리처드 도킨스로 집계됐다. 이어 4위에는 체고 민주주의의 영웅 바츨라프 하벨 전 대통령, 그리고 5위가 히친스였다.

히친스는 이 책의 서문을 쓴 뒤 6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2011년 12월 눈을 감았다. 그 서문 말미에 그는 이렇게 썼다. "이 책에 실린 글 중 일부는 이것이 마지막 글이 될지도 모른다는 심정으로 쓴 것이다. 하지만 그 덕분에 나는 삶을 가치 있게 만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생생히 깨닫게 되었다. 나의 그러한 경험 중 일부가 여기까지 내 글을 읽어줄 만큼 너그러운 독자 여러분에게도 전달되기를 깊이 소망한다."2만5,000원.


이재유 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