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세리가 확 달라졌다.마지막라운드 15번홀까지 선두에 3타나 뒤졌지만 끝까지 우승고삐를 놓치 않을만큼 샷이 예리해졌다. 이제 박빙의 경쟁을 이겨낼만큼 자기 절제력이나 담력도 커졌고, 첫 날부터 선두에 나서지 않더라도 우승고지에 오를 수 있다는 자신감도 생겼다. 무엇보다 극도로 긴장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자신의 플레이를 구상할만큼 성숙해졌다.
5일 새벽(한국시간) 오하이오주 실바니아의 하이랜드메도GC(파 71)에서 끝난 99 제이미 파 크로거클래식(총상금 90만달러)에서 박세리는 5명과의 연장접전을 뚫고 대회사상 최초의 2연패를 기록했다. 우승스코어 8언더파 276타, 우승상금 13만5,000달러. 2주전 숍라이트클래식대회 우승에 이어 시즌 2승째다.
박세리는 대회 직후 『다른 골퍼들이 공격적으로 나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에 최대한 홀에 볼을 붙이기 위해 레이업을 했고 그것이 맞아 떨어졌다』고 승인을 설명했다. 박세리는 또 『다른 사람들이 너무 긴장돼 있었기 때문에 나에게만 기회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달라진 박세리를 실감할 수 있는 대목이다.
캐디가 주는 클럽으로 무조건 샷을 하고 퍼팅하던 무표정한 박세리는 이제 없다. 홀까지 남은 야드를 스스로 판독한 뒤 샷을 구상하고, 걷는 동안 경쟁자들의 심리상태를 파악하고, 우승에 대한 욕심은 있지만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한층 성숙한 박세리가 있을 뿐이다.
막판 수많은 갤러리와 이미 퍼팅을 마친 5명의 경쟁자가 자신의 퍼팅미스만을 바라고 있을때 3㎙의 만만치 않은 훅라인의 버디퍼팅을 밀어넣을 만큼 배짱도 더욱 커졌다.
그린에 있던 5명의 경쟁자는 올 시즌 상금랭킹 선두인 캐리 웹과 LPGA 입문동기인 켈리 키니, 첫날부터 선두를 달렸던 마디 룬, 성깔있기로 소문난 셰리 스타인하우어, 17번홀까지 2타차 선두였던 카린 코크였다.
이번 대회 연장 버디퍼팅은 지난해 박세리의 마지막홀 퍼팅과 비슷했다.
그러나 지난해 퍼팅이 브레이크를 제대로 읽지 못한데다 힘도 약해 중간에 멈춰섰던 것과 달리 올해 퍼팅은 정확하게 라인을 타고 홀까지 이어졌다. 같은 우승이지만 2라운드부터 순풍에 돛단 듯했던 지난해와 그 의미가 다르다는 것이 마지막 퍼팅 하나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올 시즌 초반 심한 부진에 시달리던 박세리가 이번 대회에서 막판 투혼을 발휘하며 우승할 수 있었던 것은 심리적 안정이 가장 큰 요인으로 꼽히고 있다. 2주전 숍라이트클래식에서 우승해 첫 승에 대한 강박관념이 없어졌고, 지난주 99 맥도널드 LPGA챔피언십대회에서 공동 7위에 올라 자신감을 되찾았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무엇보다도 큰 안정은 그동안 큰 고민거리였던 남자친구문제가 해결됐다는 점이다. 홍콩계 미국인으로 알려진 로렌스 첸과의 문제를 놓고 부친 박준철씨는 물론 언론과의 갈등을 빚었던 박세리는 최근 부친과 남자친구의 저녁식사를 통해 모든 것은 인정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박세리의 나이를 감안할 때 남자친구문제의 해결은 그에게 다른 무엇보다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주는 조건이 됐다.
물론 이번 대회에서도 역시 박세리가 보완해야 할 점도 많았다. 일단 박세리 우승 계기는 카린 코크의 마지막홀 더블보기였다.
코크의 실수가 없었더라면 박세리 스스로 역전승의 기회를 만들 수는 없었다.
이유는 버디도 많고 보기도 많은 그동안의 플레이 패턴이 그대로 이어졌던데 있다.
그 플레이 패턴은 잦은 티 샷 미스 때문이었다.
마지막라운드 버디와 보기 각각 3개씩, 이븐파를 기록했던 박세리는 파 3홀을 제외한 14홀중 무려 8홀에서 티 샷을 러프에 빠뜨렸다. 그런만큼 세컨 샷 공략이 어려웠고 8홀중 3홀에서 보기를 기록했다. 따라서 티 샷 미스를 줄였더라면 연장전없이 역전승의 기회를 만들 수 있었다는 계산이 나온다.
한편 김미현은 박세리에 단 1타 뒤진 7언더파 277타로 공동 7위를 차지, 올시즌 3번째 「톱10」진입에 성공했다. /김진영 기자 EAGLEK@
최창호 기자 CHCHOI@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