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리빙 앤 조이] '한류의 날개' 한복… 실용화 서둘러야 세계화

단추·고무줄 등 편리성 살려야<br>사극 앞세워 세계 패션시장 진출




이리자씨가 서예가 안광석의 글씨와 와당무늬로 장식해 만든 생모시 한복

지난 2일 러시아 문화 예술의 상징인 차이코프스키 콘서트홀에서는 한국 전통 복식 패션쇼가 열렸다. 태평무(舞)로 시작된 1부 한국 전통 복식 패션쇼에서는 성신여대 의류학과 학생과 러시아 모델, 교민 자녀 등 80여 명이 모델로 출연해 조선시대 평민부터 왕족의 복식까지 총 150여 벌의 우리 전통 의상을 소개했다. 올해 한국과 러시아 수교 20주년을 맞은 가운데 열린 첫 민간 차원의 행사에 찾아온 러시아인들은 한국의 미(美)에 일제히 환호했다. 차이코프스키 음악홀은 그동안 철저히 음악 공연 위주로 사용돼온 곳으로, 음악 이외의 공연인 패션쇼가 열리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한다. 지난 2005년 9월 부산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을 마친 21개국 정상들은 누리마루 앞마당에서 한복 디자이너 이영희 씨가 디자인한 한복 두루마기를 입고 기념 촬영을 했다. 한복을 처음 접하는 정상들도 있는 터라 정부측은 내심 걱정했지만 민속 의상 입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던 부시 전 미국 대통령조차 한복이 우아하고 아름답다며 '원더풀(wonderful)'을 연발했다. 한류 열풍과 함께 한식이 재조명되는데 이어 한복에 대한 관심도 나날이 높아지고 있다. 국내외에서 한복 대중화를 위한 패션쇼나 전시회가 잇따른다. 하지만 한식은 일상 생활에서 매일 먹으면서 손쉽게 접할 수 있는데 비해 한복은 연중 특별한 날에나 한두번 입을 정도로 접하기 쉽지 않은게 현실이다. 따라서 전문가들은 국민들이 생활 속에서 자주 입고 자주 보이는 작업이 선행돼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내국인들이 먼저 생활에서 가까이 해야 외국인들에게도 널리 알릴수 있다는 얘기다. 일본의 기모노, 베트남의 아오자이, 중국의 치파오 같은 다른 아시아 민속 의상처럼 한복도 세계인들이 널리 애용하는 패션으로 자리잡을 날이 멀지 않았다. ◇안에서는 실용화=한복이 일상복으로 자주 쓰이면 한복 산업에 자금력이 생기고그 자금력을 바탕으로 대량생산 및 세계화를 위한 인프라가 만들어진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이같은 선순환 구조가 형성되지 못하는 상황이다. 실제로 실용화된 한복은 개량 한복이나 일부 학교에서 시행하는 한복 형태의 교복 정도에 그치고 있다. 박현주 한복산업마케팅연구소장은 "전통 한복은 양장에 비해 소재와 색상 면에서 만족도가 떨어지는데다 가격 대비 실용적 측면도 부족해 소비자 욕구를 충족시키지 못했다"고 지적한다. 대부분의 한복 디자이너들은 대량 생산이 어려운 수공업 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개별 주문을 받아 제작하다 보니 기성복처럼 대량 생산되기 어렵고 소재나 가격에 있어서도 현대인의 니즈에 맞출 수가 없는 것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한복의 고유한 특성을 살리면서도 서구식 의복 구조가 갖고 있는 편리성과 실용성을 갖추는 게 급선무라고 박 소장은 조언한다. 예컨대 옷고름을 매는 대신 매듭 단추로 여미도록 한다던가 허리 끈으로 동여매는 대신 고무줄이 들어간 바지로 대체한다던가 하는 방식이다. 또 소재 면에서도 실크와 한지, 혹은 면과 한지를 배합한 신소재를 개발해 고급스러운 촉감은 살리면서도 실용성을 높이는 것도 대안이 될 수 있다. 동전지갑이나 쿠션 등 생활에서 쓰이는 소품들을 한복의 디자인 패턴이나 소재를 응용해 만드는 것도 한복의 실용화에 보탬이 될 수 있다. 판매 저변을 확대하기 위한 노력도 필요하다. 일본의 경우 전통 복식 기모노는 한 벌에 보통 한화로 수백만원 이상 드는데도 혼수 필수품은 물론 전통 문화로서 최고의 예우를 받는다. 국내 백화점에서는 한복 매장이 사라진지 오래지만 일본 최고급 백화점에는 지금도 기모노와 원단, 장신구 등을 판매하는 전문 매장이 운영되고 있다. 또 젊은이들이 각종 이벤트나 행사에 기모노를 자주 입고 외국 국빈들에게도 기모노 시연 및 증정 행사가 동반된다. 지난해 10월 덕수궁에서 열린 '2009 한복 사랑 페스티벌' 행사의 일환으로 TV 드라마 속 한복 패션쇼와 한복디자인복 공모전 패션쇼를 주관한 모델센터인터내셔날의 도신우 대표는 "한복의 생활화는 쉽지 않은 측면이 많지만 한복이 명절에만 입는 옷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기 위해 이명박 대통령 부부를 포함한 사회 지도층 인사들이 앞장서 한복을 입었으면 한다"고 말했다. ◇밖으로는 세계화=정부는 2005년부터 한복을 우리말, 한지 등과 함께 '한스타일'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키우기 위해 디자이너 육성과 패션쇼 개최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 90년대 중반 이후부터 몇몇 디자이너들을 중심으로 미국ㆍ유럽ㆍ일본 등 해외에서 한복 패션쇼 등을 개최하며 '세계에 통할 수 있는 한복', '일상 생활에서도 편하게 입을 수 있는 한복'을 개발하는 노력이 이어졌다. 한복 세계화에 앞장섰던 대표주자로 한복 디자이너 1세대인 이영희 씨를 빼놓을수 없다. 그는 지난 93년 한국인 최초로 파리 프레타포르테에 참가해 한복을 레드카펫에 올려 놓았다. 당시 프랑스의 패션 잡지가 그의 옷을 '기모노 코레(코리안 기모노)'라고 소개한 일화는 유명하다. 일본의 기모노가 세계 시장에서 동양의 전통 의복을 상징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당시 상황에서 한복은 낯선 존재였다는 사실을 반증한 대표적인 사례이자 우리에게 부끄러운 현실이기도 했다. 이영희 씨는 최근 자신의 저서 '파리로 간 한복쟁이'(디자인하우스 펴냄)'에서 "유럽인에게 기모노와 비슷한 옷으로 인식됐던 '기모노 코레'는 파리에서 수 차례의 전시회와 부티크를 열고 컬렉션에 참가하면서 점차 '한복'이라는 고유명사로 자리잡았다"고 소개했다. 저고리를 벗겨 디자인적 파격을 시도한 것도 벌써 15년이 넘었다. 이영희 씨는 지난 94년 4번째 파리 컬렉션 무대에서 저고리 없는 한복을 선보였으며 이를 본 '르 몽드'의 패션 수석기자 로랑스 베나임이 '바람의 옷'이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다. 또 다른 한복 디자이너 1세대인 이리자 씨는 100차례가 넘는 패션쇼를 통해 한복의 아름다움을 국내외에 일깨워온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는 70년대부터 색동, 금박, 자수 등 다양한 장식기법을 활용한 한복을 디자인해 한복의 패션화를 이끌었다. 프란체스카ㆍ이순자ㆍ이희호ㆍ권양숙 여사 등 역대 대통령 부인들의 한복도 디자인했으며 자신이 45년간 만들어온 한복 가운데 350점을 지난해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하기도 했다. 한복을 접해본 외국인들은 한복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에 놀라움을 감추지 못한다. 우아하다, 색감이 곱다, 옷감의 패턴이 인상적이다 등 감탄이 끊이지 않는다. 최근에는 샤넬, 구찌 등 세계적 패션 브랜드들도 한복에서 영감을 얻은 작품을 선보이기도 했다. 최근 몇 년새 세계 각지로 수출된 한국 TV 드라마의 한류 열풍도 한복을 세게에 알릴수 있는 첨병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대조영', '대장금', '이산' 등 사극 드라마를 통해 비춰진 한복의 아름다운 멋과 한층 편리해진 기능성은 해외에서 한류의 한 줄기로 자리잡고 있다. 박현주 소장은 "한류 열풍의 한 줄기로 주목받는 한복을 세계화하기 위해서 고유의 아름다운 멋을 살리는 동시에 소재나 디자인 등에서 세계 패션 산업의 흐름에 맞출 수 있는 보편성과 실용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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