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위기의 제조업 돌파구를 찾아라] <중> 공멸 자초하는 노사분규

노사협력 세계 꼴찌 수준… 파업에 등 떠밀려 공장들 해외로

상반기 노사분규 8년 만에 최고

올 통상임금 여파 최악하투 우려… 노사 양보·타협 못하면 성장 발목

"불법·정치 파업 엄정 대응하고 무력시위 손실엔 책임 물어야"



르노삼성 노조가 지난 14일 부산공장 앞에서 파업 출정식을 갖고 있다. 완성차 업계 노사가 극렬한 대치국면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노사관계 리스크'를 걷어내야 국민경제에 닥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입을 모은다. /사진제공=르노삼성 노조

'148개국 중 132위.'(2013년, 세계경제포럼)

꼴찌나 다름없는 이 순위는 한국의 열악한 노사협력 수준을 그대로 보여주는 통계다. 수치가 증명하듯 우리나라의 노사관계는 투쟁과 갈등, 반목과 대립으로 점철돼 있다.


이 같은 '노사관계 리스크'가 올 들어 더욱 심각한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가뜩이나 환율 하락 등으로 저성장의 늪을 헤매는 한국 경제가 반등의 기회를 못 잡고 막다른 골목으로 몰리는 악재로 작용할 수 있어서다.

이기권 신임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근 취임 일성으로 "노사 간 대립과 투쟁은 우리 스스로의 발목을 잡고 있다"며 "상호 신뢰를 구축하기 위해 산업별로 노사정이 함께하는 정기적 모임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이유도 이 같은 인식이 밑바탕에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 어느 해보다 치열하고 격렬한 노사 간의 충돌이 전개되고 있는 가운데 전문가들은 노사가 양보와 타협의 지혜를 발휘해 국민 경제에 닥친 위기의 파고를 슬기롭게 넘어서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아울러 과격한 무력시위와 불법파업으로 끼친 손실에 대해서는 반드시 엄중한 책임을 물어 올바른 노사관계의 모델을 정립할 시점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산업계, '최악의 하투'와 씨름 중=산업계와 노동계가 올해 최악의 하투를 전개할 것이라는 우려는 연초부터 제기돼왔다. 통상임금과 정년연장, 근로시간 단축 등의 대형 노동 이슈가 한꺼번에 몰린 탓이다.

이 같은 우려는 기우가 아니었다. 실제 올해 상반기 노사분규는 45건으로 지난 2006년 이후 8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임금단체협상 타결률 역시 최저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별 사업장별로는 삼성전자서비스협력사 노조가 지난 5~6월 한 달 이상 장기파업을 벌인 데 이어 현대·기아차와 르노삼성·한국GM 등 완성차 업계 전체가 첨예한 노사갈등을 나타내고 있다.

이형준 한국경영자총협회 노동정책본부장은 "여러 현안 중에서도 통상임금이라는 핵폭탄급 이슈 때문에 노사 간의 골이 더욱 깊어지고 있다"며 "사업장별로 소송 결과를 기다릴 수밖에 없는 현시점에서는 타협의 여지를 만들어내기가 좀처럼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잦은 파업에 해외 생산 비중 늘려…=매년 노사갈등이 끊이지 않는 사업장인 현대차의 경우 1987년 노조 설립 이래 무(無) 파업으로 임단협이 마무리된 것은 총 5번(1994년, 2007년, 2009~2011년)에 불과했다.

관련기사



2012년과 2013년 현대·기아차는 각각 61일, 28일간 파업을 벌여 총 4조1,756억원의 매출 손실을 빚었다. 이 같은 불안한 노사관계의 부담은 결국 사측의 해외 생산 비중 확대로 이어지고 있다. 실제로 2011년 48%였던 해외 생산 비중은 2012년 51%, 2013년 55% 등으로 꾸준히 늘고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생산 비중이 2011년 52%에서 지난해 45%로 쪼그라들었을 뿐 아니라 생산량 역시 같은 기간 약 346만대에서 341만대로 줄었다.

회사 관계자는 "글로벌 기업으로서 해외 생산기지 확대는 필수적인 전략"이라면서도 "노조의 잦은 파업이 국내 생산 비중을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인 중 하나라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GM이나 르노삼성처럼 외국계 회사를 모기업으로 둔 경우에도 파업은 중장기적으로 한국 공장의 물량 확보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불법·정치파업에는 엄정 대응해야"=물론 임금인상 등 근로조건에 대한 의견이 사측과 엇갈리는 데서 비롯된 합법적인 쟁의는 반드시 보호받아야 할 근로자의 권리다.

더욱이 10% 수준에 불과한 노조 조직률이 말해 주듯 대다수 영세 사업장 근로자들은 기본적인 노동삼권조차 제대로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하지만 현대차를 비롯한 일부 강성 노조나 노동단체의 불법·정치파업에 대해서는 엄정한 법 집행을 통해 선진적인 노사문화를 하루빨리 정립해야 할 시점이라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강성진 고려대 경제학과 교수는 "무력을 동반한 불법파업, 근로조건과 무관한 정치파업 등의 낡은 투쟁 방식이 국민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대차의 경우 2009년까지만 하더라도 노조의 불법 행위에 대해 손해배상청구 소송을 제기한 후 임단협 과정을 거치면서 노조 요구에 따라 법원에 제기한 손배소를 관행처럼 철회해왔다.

이 같은 관행은 2010년 현대차 하청 노조의 연이은 울산공장 점거 사건을 계기로 사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2010년 이후 현대차는 공장 점거와 라인 중단을 벌인 근로자 88명에 대해 총 129억2,400만원의 손배소를 제기했으며 울산지법은 사측이 산정한 청구 금액 대부분을 인정, 근로자들에게 119억6,956만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현대차 관계자는 "노조의 무력시위에 '법과 원칙의 준수'라는 기본 전제를 갖고 대응하기 시작하면서 불법 파업도 많이 사라지고 있는 추세"라고 전했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