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글로벌 리더] 최준근 한국휴렛팩커드 사장

"외국기업 최고 CEO" 골수 HP맨휴렛팩커드(HP)가 지난 95년 한국인 CEO를 발탁할 때 단 한차례의 주저함도 없이 최준근(49)사장을 선택했다. 그는 외국계 기업들이 선호하는 해외유학파도 아니고 어느 정도의 경영 노하우를 갖춘 MBA출신도 아니다. 지난 82년 최 사장이 삼성그룹에서 HP소프트웨어연구소의 개발업무를 맡으며 시작된 HP와의 14년 인연이 열쇠. 주변에서는 HP의 기업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다는 점, 오랜 인연으로 회사내 탄탄한 휴먼네트워크를 구축하고 있다는 점 등을 최 사장의 강점으로 꼽고있다. 여기에다 그의 판단력과 추진력에 대한 HP의 두터운 믿음도 한몫 단단히 했다. 국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 루 프랫 HP 전 회장은 한국을 직접 방문, 당시로서는 상당히 많은 3억5,000만달러를 투자하기로 결정했다. 여의도 고려증권빌딩을 흔쾌히 매입했으며 당시 삼성이 소유했던 49% 가량의 한국HP 지분도 군말없이 인수했다. HP는 특히 하루하루가 경영의 위험수위를 넘나들던 당시의 국내기업들에 대해 장기 자본투자(financing)도 강행했다. 최근에도 본사가 한국HP에 대해 1억5,000만달러 증자를 결정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에는 바로 최준근 사장에 대한 신뢰. 최사장은 HP가 국내에 들어올 때부터 인연을 맺어, 사실상 연구직에서 관리직에 이르는 모든 부문을 섭렵한 골수 HP맨이다. 그가 관리본부장으로 일할 당시 수년간 업무량은 지속적으로 늘었으나 직원수는 한 명도 늘지 않았던 것으로 유명하다. 관리업무의 리엔지니어링을 이룩한 것. 그는 또 휴렛팩커드 역사상 최단 기간에 주문량을 10억달러로 끌어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한국HP는 현재 직원수 900여명에 매출 1조4,000억원에 달하는 명실공히 한국 최고의 정보기술기업이다. 한국HP의 매출은 현재 그룹전체의 2.2% 수준. 국내에 진출한 외자 기업 대부분이 본사 총 매출의 1%를 넘기지 못하고 있는 것에 비하면 엄청난 성과다. 97년 외환위기 직전에는 2.5%에 이른 적도 있었다. 지난 2000년에 한국HP가 전 세계 HP기업중 최고로 선정된 데는 이 같은 놀라운 실적이 뒷받침하고 있다. 그는 HP의 이 같은 성공이 리더십, 원활한 커뮤니케이션, 고객을 제대로 알려는 자세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최근 대학생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국내에서 가장 일하고 싶은 기업으로 HP가 꼽혔을 정도다. "그동안은 거의 경력사원 위주로 인력을 충원했지만 올해부터는 대학을 졸업한 신입사원의 비중을 70%로 대폭 늘리기로 했습니다. 이제는 중견기업쯤 됐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해 대학졸업생 채용에 대해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는 고객의 목소리에도 직접 귀를 기울이기 위해 고객 불만족 사항을 자신의 개인 e메일에 직접 연결해 점검하고 있다. 많을 때는 하루70~80여건이 되는 메일을 확인한다. '고객만족 경영'은 최사장의 단골 주제어. 단 하루라도 이 소리를 듣지 않는 날이 없다는 것이 직원들의 귀띔이다. HP는 최근 컴팩과의 합병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사의 합병은 2위업체인 IBM과의 격차를 더욱 벌려 말 그대로 하드웨어 분야 전 세계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닉스 분야와 기업용 제품에서 강점을 가진 한국HP와 영업망 조직활용에서 뛰어난 컴팩코리아가 결합하면 국내 시장에서 시너지 효과는 기대 이상이 될 것입니다." 올해 그의 계획은 제품 분야뿐 아니라 서비스 사업에서도 한국HP를 선두주자로 끌어올린다는 것. IT아웃소싱분야(IT 업무 위탁 경영)와 IT 컨설팅 분야에서 각각 3개 이상의 굵직한 성과를 일궈낼 욕심도 가지고 있다. 최사장은 특히 직원들의 힘을 철저하게 믿는다. "부하 직원은 상사의 거울입니다. 부하 직원들을 바라볼 때 부끄러움이 없도록 매일같이 자신을 채찍질 합니다." 그는 외국서 MBA를 밟는 것 만이 훌륭한 CEO가 되는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라며 "오히려 토종 한국인으로서 최고의 국내 외국기업 CEO로 불리는데 자부심을 느낀다고"고 말했다. ■ One Point Speech 그는 모든 가치 척도가 돈으로 결정되는 사회를 부끄럽게 생각한다. "돈만 있으면 사회적 비리와 잘못이 지워지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그는 "학문, 사회봉사, 예술등 각자의 분야에서 묵묵히 자신의 가치와 명예를 소중히 하며 길을 걸어가고 있는 사람들이 존중받는 사회가 되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인이 사회적으로 잘못된 가치를 바로 잡는데는 한계가 있다고 통감하고 있다. 이 때문에 가장 먼저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고 믿고 있다. "부모가 자식에게 참다운 가치가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합니다. 무한정 사랑만 보여준다고 해서 바람직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참사랑은 자녀의 잘못된 것을 지적해 주는 것이며 자녀에게 봉사의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최근의 교육에 대한 안타까움이 잔뜩 배어있다. ■ Life Story 53년 경남에서 태어나 부산대 전기공학과를 졸업했다. 75년 삼성그룹에 공채로 입사한 뒤 82년 HP 소프트웨어 연구소에서 개발업무를 담당하며 HP와 인연을 시작했다. 84년 삼성HP 소프트웨어개발 차장을 거쳐 86년 삼성HP 고객지원본부 프로젝트 사업부장을 역임했다. 93년 한국 HP관리본부장 상무를 거쳐 95년에 한국HP 대표이사로 발탁됐다. 홍병문기자 사진=김동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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