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버트 갈루치 전 미 국무부 차관보는 19일 서울 그랜드하얏트호텔에서 개최된 '아산핵포럼 2013'의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 20년간의 대북정책을 '실패'로 못 박았다.
그는 지난 1993년 북한이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한 후 고조된 '1차 북핵 위기' 당시 미국 측 협상 대표로 활약하며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골자로 한 '제네바 합의'를 이끌어낸 인물이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제네바 합의 당시인 1994년 미국 측 수석대표 자격으로 합의서에 직접 서명하는 등 북핵 문제와 인연이 깊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북한은 궁극적으로 대륙간 탄도미사일(ICBM) 개발과 결합된 강력한 핵무기 프로그램을 지향하고 있다"며 "북한의 핵탄도미사일 프로그램 증강은 동북아 핵 비확산 체제의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또 "현재 북한은 최대 8개의 핵무기에 쓰일 수 있는 20∼40㎏의 플루토늄을 축적한 것으로 보인다"며 "현대화된 가스 원심분리기 농축프로그램으로 분열성 핵물질도 매일 축적하고 있다"고 내다봤다.
북한의 핵기술이 테러단체 등에 전달되는 것에 대한 우려도 나타냈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북한은 언제든 자국의 핵무기에 사용되는 핵물질이나 기술을 테러단체나 테러지원국으로 전달할 수 있다"면서 "북한은 시리아에 플루토늄 재처리시설을 건설했고 이 시설은 완공되기 6년 전에 이스라엘의 폭격으로 파괴됐다"며 이 같은 일이 언제든 재발할 수 있음을 경고했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북한의 핵무장 방지를 위해 보다 포괄적인 접근을 주문했다. 그는 "최고의 해결책은 북한의 입장과 의도를 파악하기 위한 노력과 외교적인 대화를 통해 지역 내 안보갈등을 줄일 수 있는 정치적 합의점을 찾는 것"이라며 "외교 역량을 북한의 핵 프로그램에만 집중할 게 아니라 정치ㆍ경제ㆍ안보 이슈를 함께 다루는 방향으로 확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를 위한 선결요소로 ▲탄탄한 한미동맹 ▲중국 정부와의 협의 ▲국내의 정치적 지지 등을 꼽았다.
한편 이번 아산핵포럼은 아산정책연구원 주최로 19일부터 이틀간 진행되며 게리 세이모어 전 백악관 국가안보회의 대량살상무기 조정관, 루이스 에차바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원자력기구(NEA) 사무총장 등 핵정책 전문가 300여명이 참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