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포럼] 차명계좌 어떻게 차단할 것인가


대한민국은 차명계좌 천국이다. 우선 차명계좌는 고소득 전문직과 자영업자가 매출을 숨겨 탈세하는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그리고 재벌을 비롯한 부유층의 편법ㆍ불법적인 증여ㆍ상속과 비자금 조성에 광범위하게 이용됐다. 또한 부자들은 배우자ㆍ자녀ㆍ친인척 명의로 차명계좌를 만들어 예금을 분산 예치함으로써 금융소득종합과세를 회피해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줄이는 수단으로 활용해왔다.

무조건 증여세 부과땐 부작용 우려

차명계좌는 탈세 외에 다양하게 불법과 탈법에 동원된다. 예금과 주식 등 금융자산을 차명계좌로 분산해 연금 대상자가 아닌 부자가 연금을 타내기도 했다. 뇌물, 마약, 밀수, 주가 조작 등 불법 자금을 숨기는 데도 어김없이 차명계좌가 이용된다. 차명계좌가 바로 지하경제의 주범이다.


지금까지 차명계좌에 숨긴 재산이나 소득이 드러나도 별다른 불이익 없이 차명계좌 사용으로 이득을 본 세금 등을 토해내면 끝이었다. 금융실명거래법상 차명계좌 사용에 대한 아무런 불이익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부터 자금 소유자가 차명계좌에 자금을 입금한 경우 입금된 시점에 차명계좌 명의자가 증여받은 것으로 추정해 증여세를 과세할 수 있도록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5조 제4항이 신설됐다. 예컨대 부친이 자녀 명의의 계좌를 사용하면서 3억원을 입금한 경우 자녀에게 4,400만원의 증여세가 부과될 수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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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명계좌에 입금한 자금을 다시 빼내온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빼내온 자금이 다시 증여에 해당돼 증여세를 이중으로 부담(위 사례의 경우 부친에게 다시 증여세 4,400만원 부과)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소득세와 건강보험료를 피하려다 이의 몇 배에 해당하는 증여세를 물어야 하는 ‘차명계좌의 덫’에 걸리는 것이다.

금융실명거래법에 의하면 금융기관과의 모든 거래에 가명이나 차명을 사용할 수 없다. 덕분에 가명으로 계좌를 만드는 일은 상당 부분 근절됐다. 하지만 계좌 명의자가 직접 금융기관 창구에서 계좌를 만들고 그 계좌를 자금 소유자에게 건네주는 차명계좌는 금융거래실명제가 시행된 후 20년이 지난 현재도 아무런 제약 없이 남용되고 있다. 차명계좌에 대해 아무런 규제가 없는 금융실명거래법의 허점 때문이다. 많은 국민이 차명계좌의 덫에 걸려든 데는 차명계좌를 방치한 국회와 정부의 잘못이 크다. 이제 와서 과거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에 증여세를 부과한다면 당국이 차명계좌라는 덫을 처 놓은 후 걸려드는 국민을 잡는 것이나 다름없다.

앞으로 정부가 지하경제 양성화 차원에서 차명계좌에 대한 대대적인 세무조사에 나설 경우 조세 저항과 사회적 혼란, 은행 예금 유출 등을 유발해 금융대란을 일으키지 않을까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현상이 투자와 소비 감소로 이어질 경우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만만치 않을 것이다.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잘못을 범하는 게 아닌지 염려스럽다.

실명제법 강화 등 제도정비 더 급해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에 무조건 증여세를 부과하기에 앞서 차명계좌를 규제하는 법과 제도 구축이 먼저다. 차명계좌에 입금된 자금의 30%에 해당하는 금액을 과징금으로 부과하고 차명계좌 명의 대여자와 사용자 모두를 형사 처벌하는 방향으로 금융실명거래법을 강화해야 한다. 그리고 이미 차명계좌의 덫에 걸린 당사자에겐 이를 정리할 수 있는 유예기간을 줘야 하고 유예기간이 지난 후에 차명계좌에 남아 있거나 새로이 입금되는 자금에 증여세를 과세하는 것이 신뢰 이익 보호와 소급과세 금지 원칙에 맞다. 이래야 차명계좌 사용이 원천적으로 차단되면서 지하경제가 줄어들고 세수가 늘어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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