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재영의 강한 남성 만들기] 방송사고가 호재로… '노출 마케팅'

때는 기원전 12세기경, 도리아인들의 그리스 침공으로 아테네 군대가 거의 전멸하고 말았다. 이때 한 군인이 용케 빠져나와 아테네에서 초조하게 소식을 기다리던 여인들에게 패전 소식을 전했다. 남편의 전사 소식을 들은 여성들은 절망에 빠졌는데, 이성을 잃은 나머지 옷을 벗어 혼자서 도망친 이 군인을 목 졸라 죽여 버렸다. 당시 여성들은 일체의 바느질이나 재단이 없이 옷감 한 장을 어께에 걸치는 페플로스 복장을 하고 있었기에, 한쪽 어깨에 달린 옷핀을 뽑으면 알몸이 되었다. 해서 여성의 노출을 비겁자에 대한 응징에서 비롯되었다고도 하는데, 최근 포털 사이트 검색어 순위에는 ‘가슴 노출’이 수위를 차지하고 있다. 가수 아유미가 생방송 도중 가슴을 고정시키는 속옷이 빠져 노래를 중단했으며, 제주에서 열린 ‘월드미스유니버시티 세계대회’에서 한 참가자가 민속의상을 입고 살사 리믹스를 선보이다 가슴이 노출되었다. 이어 게임전시회에서 열린 댄스 공연 중 여성 댄서의 상의가 젖혀지면서 가슴이 드러나기도 했는데, 불과 며칠 사이에 연이어 사고가 터지자 우리나라도 ‘노출 마케팅 시대’에 접어들었다는 평가가 나왔다. 노출마케팅은 팬들의 주목을 끌기 위해 사고를 빙자해 가슴이나 사타구니를 노출하는 것으로 단기간에 주목을 끌 수 있고, 언론 보도가 집중되어 브랜드나 연예인의 지명도를 높여주는 효과가 있다. 하지만 노출은 인류 역사에서 무수한 시련을 겪었다. 최초의 남성인 아담의 초기 그림에는 배꼽을 그려 넣지 않았으니, 아담을 신이 창조했기 때문이다. 즉, 성적 교접에 의한 잉태로 태어나지 않았기에 모태와의 연결 흔적인 배꼽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배꼽을 제2의 성기로 여기기도 했는데, 중세 이후에야 배꼽을 그려 넣었다. 가슴도 수유를 위한 부득이한 노출을 제외하고는 꽁꽁 감추어야 할 부위였는데, 봉긋하게 돌출된 가슴을 여성미의 상징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해서 성적으로 문란했던 중세 유럽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문화권에서 가슴을 가렸다. 배꼽과 유방을 드러내는 노출문화는 마침내 심볼 공개로 절정을 이루게 되는데, 화가 폴 데보이가 음모(陰髮)를 세밀하게 묘사한 그림이 효시였다. 해서 수 천 년 간 예술 작품에서 조차도 표현이 금기시 되던 심볼 노출의 금가 깨어졌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종교용어는 물론이고 법률용어에서마저도 외면했다. 이를테면 <법화경(法華經)>의 한 대목인 ‘용왕의 딸에게서 그녀의 여근이 사라지고 남근이 나타나’라는 대목은 우리나라에 도입될 때 ‘용녀를 보니 홀연히 남자의 몸으로 변하여’로 희석되었다. 또한, 선조 때 한양 운종가에서 아내의 간통을 적발한 남편이 아내의 국부를 돌로 쳐서 죽인 사건이 있었는데, 사건의 조서에 국부의 표현을 두고 고민한 끝에 ‘모나지 않은 돌로 차마 눈뜨고 볼 수 없는 곳을 쳐 죽였다(打殺不忍見之處)’라는 판례를 남겼다. 이처럼 노출을 엄격하게 금기시하던 우리나라도 배꼽티에 이어, 란제리 룩, 스포츠 브라와 같은 획기적인 패션의 유행을 통해 노출사회로 접어들었는데, 급기야 노출마케팅 시대를 맞게 되었다. 노출을 무조건 금기시할 필요는 없다. 노출 역시 적극적인 미의 과시이며 의사 표현이기 때문이다. 다만 온가족이 시청하는 공중파 방송에서 심심치 않게 노출 사고가 일어난다면 민망하기 그지없을 것이다. 따라서 ‘노출’로 관심을 끌기 보다는 ‘실력’으로 주목 받아야 할 터인데, 노출시대를 맞아 이른바 ‘성기미팅’이 유행하고 있어 우려된다. 성기미팅은 젊은 남성들이 자신의 심볼을 인터넷 만남 사이트에 올려놓고, 여성의 낙점을 받아 하룻밤을 즐기는 새로운 풍속인데, 남성의 심볼 역시 무조건 크다고 좋은 것이 아니다. 성적 능력은 심볼의 크기도 중요하지만, 강직도나 조루여부, 테크닉, 사랑하는 마음, 침대 매너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오케스트라 연주와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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