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아주 석연찮은 판결을 내려 지금 원자력산업계에 '소리 없는 태풍'이 몰려드는 격이다. 부산 기장의 고리원전 인근(10㎞ 내외)에서 20년을 살았던 원고가 원전 방사선 때문에 갑상샘암(갑상선암)에 걸렸다며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1,500만원을 지급하라며 일부 승소판결을 내린 것이다.
방사능량 작아 '영향 있다' 보기 어려워
재판부는 판결 근거로 서울대 의학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제시했다. 1991년부터 2011년까지 원전 주변의 암 발생 위험도를 조사한 결과, 원전 주변에 사는 주민의 갑상샘암 발생률이 원거리에 사는 주민보다 1.8배 높았다는 것이다. 원고 역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고리원전 지역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갑상샘암 진단을 받았다.
그런데 이 판결은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참으로 의문이다.
첫째 재판부는 판결 근거로 사용된 서울대 의학연구원의 역학조사 결과를 100% 파악하지는 못한 듯하다. 조사의 결론은 갑상샘암이 증가한 것이 원전 주변 방사선과 무관하다는 것이기 때문. 필자가 한국연구재단의 원자력단장으로 근무할 당시 판결 근거가 됐던 관련 연구의 결과를 보고받을 기회가 수차례 있었다. 당시 조사팀은 "60대 이상과 여성의 암 발생률은 주변 지역이 원거리 지역보다 높았지만 통계적 유의성이 없어 방사선의 영향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둘째 원전 주변의 방사선량은 0.05mSv(밀리시버트) 이하다. 우리들은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연간 2.4mSv 수준의 방사선에 노출된다. 즉 누가 보더라도 원전으로 인한 방사선량은 극히 미미한 수준에 불과하기 때문에 그 영향으로 암이 발병했다면 자연방사선에 의해서는 얼마나 많은 암 환자가 발생하겠는가.
셋째 갑상샘암은 진단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발병 건수가 증가하는 것이지 실제 증가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검사 횟수가 늘고 진단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더 작은 것까지 발견이 가능해 발병 건수가 늘어나는 것이다.
이는 마치 암 사망률의 증가와 같다. 암으로 인한 사망률 증가는 암이 더욱 심각해져서가 아닌, 암 이외의 다른 질병에 대한 획기적인 치료법이 개발됨에 따라 다른 병으로 사망하는 사람이 감소하기 때문이다.
넷째 만일 원전에서 위법한 일이 발생해 대량의 방사선이 유출됐고 이에 피폭된 누군가가 손해배상을 요구한다면 그건 사업자인 한수원의 책임일 것이다. 그러나 법으로 정한 제한치 이하로 원전을 정상 운전했다면 위법한 것이 아니므로 손해배상 대상이 되지 않는다. 이 경우 손해가 발생했다면 기준을 만든 정부가 배상 대상이다. 따라서 재판부는 원고에게 한수원이 아니라 정부를 대상으로 기소하라고 했어야 옳다고 본다.
원전에 대한 국민 오해 야기 말아야
현재 한수원은 원전에서 나오는 제한치 이하의 방사선과 암 발생 간의 인과 관계로 인해 배상하라는 세계 최초의 판례에 대해 "판결의 인과 관계가 모호하다"며 항소한 상태다.
필자의 상식으론 재판부의 판결은 납득이 되지 않는다. 한수원 측의 변론에 문제가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번 판결은 연구 결과의 일부만을 판결 근거로 삼은 오류, 극미량의 방사선에 대해 비과학적인 이해, 갑상샘암에 대한 몰이해 등으로 빚어진 듯하다. 그래서 이번 판결이 국민에게 원전과 방사선에 대한 오해를 야기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