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월요초대석] 이덕훈 우리은행장

대담:김희중 경제부장 jjkim@sed.co.kr “95년 이후 국민소득이 1만달러 안팎에 머물고 있는 우리경제가 한단계 더 발전해 선진국으로 진입하려면 결국 기업이 발전하는 수 밖에 없습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이 안정적인 경영을 통해 자본을 축적해 가면서, 이를 가장 효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기업들에게 우선적으로 배분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우리나라 최대의 기업금융 은행을 이끌고 있는 수장답게 “은행들이 차별화된 서비스를 통해 기업금융을 강화해야 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그는 특히 “과거와는 달리 은행이 어느 기업을 선택하느냐가 아니라 기업이 어느 은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도 있고 망할 수도 있는 경우가 생겨 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행장은 은행권 구조조정에 대해 “최근 은행산업의 패러다임이 규모에서 질(質) 위주로 전환되고 있다”며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과 영업환경 등을 고려할 때 무리한 대형화 추진은 자칫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올해는 북핵문제, 가계 및 기업대출의 연체증가, SK글로벌 분식회계 사태 등 대내외적으로 경제가 매우 어렵습니다.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보시는지요. ▲지난 3월부터 SK글로벌 사태를 비롯한 여러 불안요인이 동시에 터져 나오면서 금융시장이 일시적으로 패닉(panic)상태에 빠지는 등 경제가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외국투자가들이 빠져나가고 원화가치하락, 외평채 가산금리 급등 및 해외자금 차입여건 악화, 카드채 문제 등으로 은행경영에도 큰 애로를 겪고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최근 국내상황이 지난 97년 말 외환위기 때와 비슷하거나 더 하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을 정도니까요. 그러나 전반적으로 외환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고, 과거처럼 금융기관과 기업들이 구조조정을 통해 위기를 극복해 나가는 등 경제 주체들이 현명하게 대처하면 충분히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다고 봅니다. -외환위기후 강도높게 추진돼 오던 기업구조조정이 마무리 국면으로 접어드는 느낌입니다. 우리은행의 경우 가장 많은 워크아웃 기업들을 관리하고 있는데. 그동안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외환위기후 기업부도의 도미노 현상을 막고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의 가치회복을 위해 정부와 은행이 나서 워크아웃 등 다양한 방식으로 기업구조조정을 추진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어느 정도 옥석이 가려져서 정리할 만한 곳은 정리가 된 상태고, 나머지 회생가능성이 있는 기업들은 아직까지 정상화작업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우리은행은 대우계열사 등 32개 업체를 대상으로 기업개선작업을 추진해 왔는데 지난 3월 말 현재 7개업체를 졸업시키고 10개업체를 정리했습니다. 또 15개업체(자율추진기업 3개 포함)에 대한 구조조정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올해는 워크아웃 기업들이 우량기업으로 변모하도록 구조조정과 기업문화 쇄신을 더욱 강화해 나갈 것입니다. 그러나 최근 나빠진 경제상황으로 인해 경영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기업들이 여전히 있는 만큼 긴장을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같은 맥락의 질문입니다만, 요즘 은행들은 저마다 소매금융에만 매달려 기업에 대한 지원을 다소 소홀히 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기업금융은행을 경영하는 CEO(최고경영자)로서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은행들이 상대적으로 장사하기가 쉬운 소매금융에 지나치게 매달려 온 측면이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인을 대상으로 한 영업만으로는 분명히 한계가 있습니다. 특히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들어서려면 기업의 발전이 필수적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은행이 경제발전의 동반자라는 의식을 갖고 기업들에게 효율적으로 자금을 지원해 나가야 합니다. 다만 리스크관리를 철저히 해야겠지요. 최근에는 기업금융에 주력해 온 은행들이 외환위기 때 어려움을 겪었듯이 소매금융전문은행들이 부실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금융을 지나치게 상업적인 잣대로 보는 은행들의 경우 기업이 어려움에 빠져도 자칫 도움을 받지 못하는 경우가 생길 수 밖에 없습니다. 과거에는 기업 때문에 은행이 망했으나 앞으로는 기업이 어느 은행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발전할 수도 망할 수도 있는 경우가 생겨날 것입니다. -신한은행이 조흥은행을 인수하면 자산규모 136조원대로 200조원대의 국민은행에 이어 2위은행으로 발돋움합니다. 우리은행은 3위로 밀려나는 등 합병 등으로 규모를 키운 대형은행들과의 경쟁이 더욱 심화될 것으로 보이는데…. ▲은행권에 대형화를 통해 시장지배력확대를 추진하는 흐름이 이어져 왔고 아직도 그러한 경쟁구도가 마무리된 것은 아닙니다. 앞으로도 시장의 힘에 의한 추가합병이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만 최근 대내외적으로 어려운 경제상황과 영업환경을 고려할 때 무리한 대형화 추진이 자칫 위기를 불러올 수도 있습니다. 또 최근 은행산업의 패러다임이 규모에서 질 위주로 전환되고 있는 흐름에도 맞지 않다고 봅니다. 지금부터는 은행산업의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금융소프트웨어 개혁이 무엇보다도 중요합니다. 경쟁은행들이 합병에 따른 본격적인 시너지효과를 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걸리기 때문에 그 사이 우리은행은 리스크를 감안한 수익구조 개선과 우량자산 위주의 규모 확대를 통해 확고한 경쟁우위 기반을 다져나갈 계획입니다. -올해 은행권은 물론 기업들에게 던져진 새로운 화두 가운데 하나가 윤리경영입니다. 기업들이 어떻게 대처해 나가야 한다고 보십니까. 또 우리은행의 전략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지난해 미국의 엔론사태와 최근 국내에서 발생한 회계분식 사태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윤리의식을 망각한 기업은 정상적인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특히 금융업에 있어서 고객의 신뢰상실은 영업기반의 붕괴를 의미하며, 스스로의 존립을 부정하는 것이지요. 우리은행은 올 상반기 중 윤리경영시스템을 완벽하게 구축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강도높은 윤리경영을 위해 임원급이 참여하는 윤리위원회와 부서장급 중심의 윤리경영지원협의회를 구성할 예정입니다. 아울러 거래기업의 윤리경영을 유도하기 위해 여신심사 때 기업고객의 윤리경영 지수를 반영할 예정이며 기업윤리 경영의 표준모델을 만들어 제시할 방침입니다. -은행들의 경영상황이 전반적으로 나빠지고 있는데 올해 우리은행의 경영목표와 이를 달성하기 위한 영업전략을 무엇입니까. 또 예금보험공사와 맺은 경영개선이행약정(MOU) 달성은 가능하다고 보십니까. ▲취임 당시 우리은행은 외환위기 이후 기업부실의 여파로 대규모 적자를 기록하고 있었습니다. 또 합병은행으로 출범한 후에도 계속된 구조조정과 새로운 인프라 구축 등에 많은 역량을 집중한 관계로 정상적인 경쟁력을 발휘할 수 없는 상태였습니다. 이에 따라 취임 후 우선 과감한 경영혁신과 부실감축 등을 통해 은행의 체질개선에 역점을 뒀습니다. 그 결과 우리은행은 지난해 총자산이 100조원을 넘어섰고 영업이익 2조8,528억원, 당기순이익 7,726억원 등 기대 이상의 경영성과를 거뒀습니다. 이를 토대로 올 해 경영목표를 영업이익 3조2,800억원, 당기순이익 1조500억원으로 정했습니다. 올해는 대내외적으로 영업환경으로 인해 어려움이 예상되지만 경영목표를 달성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특히 지난 3월부터는 어려운 경영환경을 극복하고 올해 경영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비상경영체제를 가동하고 있습니다. 비상경영을 통해 영업전략을 성공적으로 추진해 올해 MOU(양해각서) 목표 역시 달성할 수 있도록 할 계획입니다. [발자취] 금융정책 20년 연구하다 경영인변신 우리은행 맡은후 2년연속 흑자 일궈 “제가 처음에 행장으로 올 때는 아무도 오겠다는 사람이 없더니 지금은 이 자리를 노리는 사람이 많다니 경영이 많이 좋아졌나 봅니다”. 지난 3월 정기주총을 앞둔 어느날 기자가 행장실에 찾아가 세간에 떠도는 `교체설`과 관련해 심경을 묻자 이덕훈 우리은행장은 이같이 답하며 웃어 넘겼다. 학자 출신이 거대은행을 제대로 이끌어 갈 수 있겠느냐는 일부 우려 속에 취임한 지 2년여가 흐른 지금. 2년 연속 흑자를 내는 등 은행경영이 안정을 되찾으면서 이제는 자신감이 생겼고 나름대로 여유도 찾은 듯 했다. 이 행장은 우리나라가 고도 산업사회로 성장하던 시기에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20여년간 금융정책을 연구하면서 한국금융의 이론적 틀을 만드는 주춧돌을 놓은 학자다. 그러나 그는 단순히 `공부만 하는 학자`는 아니었다. 재무부장관 자문관, 축협중앙회 이사, 금융개혁위원회 행정실 실장, 금융산업발전위원회 심의위원, 정책평가위원회 위원, 한국조폐공사 및 한국산업은행 사외이사 등을 지내 우리 금융현실에도 밝다. 특히 KDI에 봉직하면서 금융연구팀 팀장을 맡아 은행과 제2금융권의 발전방안에 관한 많이 연구했다. 이 같은 경력은 외환위기후 국내 금융계가 위기에 빠지면서 더욱 빛을 발했다. 이 행장은 지난 2001년5월 대한투자신탁증권의 대표로 취임하면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학자에서 경영인으로 변신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3월엔 관악지점 불법대출사건으로 위기에 빠진 우리은행(당시 한빛은행)의 경영을 책임진다. 이 행장이 현재 꿈꾸는 우리은행의 비전은 `한국경제의 중추인 정통 토착은행으로 한국금융의 자존심을 천하에 세우고 꿈과 희망을 실현하는 사랑 받는 은행`이다. 우리경제와 고락을 함께 해 왔다는 자부심과 고객 제일주의를 바탕으로 21세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리딩뱅크`를 실현하겠다는 다짐이다. ◇약력 ▲49년 서울 출생 ▲서강대 경제학과 졸 ▲76년 미국 웨인주립대학원 경제학 석사 ▲81년 미국 퍼듀대 경제학박사 ▲86년 KDI연구위원 ▲88년 금융발전심의회 위원 ▲89년 재무부장관 자문관 ▲91년 KDI금융팀 선임연구위원 ▲98년 상업ㆍ한일은행 합병추진위원회 부위원장 ▲2000년 대한투자신탁증권 사장 ▲2001년 우리은행장 [내가본 이덕훈 행장] 장현수 일양토건 대표 학자출신 전문성에다 실무 겸비한 CEO 中企등 몸소방문 경영애로 파악 열정도 내가 이덕훈 행장을 처음 만난 것은 이 행장이 우리은행장에 취임한 직후 가진 우리은행 비즈니스클럽의 조찬 세미나에서다. 우리은행 비즈니스클럽은 우리은행과 거래하는 우수 중소기업 경영자들의 모임으로 이 행장 취임 당시 600명이던 회원수가 이제는 1,600명으로 늘어났다. 이 행장은 지난 2001년 취임 첫 해와 이듬해 연속 흑자를 기록하며 우리은행을 한국금융의 대종가로서의 위치를 다시 찾게 한 사람이다. 이제는 학자라기보다는 이론과 실무를 겸한 전문경영인으로서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최고경영자다. 이러한 이미지는 지난 2월 내가 우리은행 비즈니스클럽의 회장이 된 후 이 행장과 회동이 잦아지면서 더욱 확고해졌다. 이 행장은 현장을 중시하는 경영자다. 분기마다 개최하는 비즈니스클럽 조찬 세미나에 한번도 빠지지 않고 참석할 뿐만 아니라 지난해 경남지역 태풍피해 중소기업을 일일이 찾아 다녔고, 대구 지하철 참사에 따른 중소기업의 경영애로를 파악하기 위해 대구를 직접 방문하기도 했다. 특히 지난 3월 이라크전쟁, 북 핵 문제, 사스(SARS), SK글로벌 분식회계 사건 등으로 국내외 경제상황이 불확실성에 직면하게 되자 즉각 비상경영을 선포하고 중소기업 고객의 경영애로 파악을 위한 현장방문 프로그램을 수립해 은행장을 포함한 모든 임직원이 고객을 직접 방문, 경영애로를 파악하는 등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도 인상 깊은 대목이다. 아울러 요즘처럼 노사문제로 어려울 때 우리은행의 노사관계야 말로 바람직한 표본이 되고 있다고 생각되는데, 이 역시 이 행장의 격의 없는 소탈함과 노조원 한사람 한사람의 애로를 청취하고 함께 하고 있기 때문인 듯 싶다. 남대문시장을 즐겨 찾으면서 시장경제를 수시로 확인하고 중소기업을 직접 방문해 생생한 현장의 목소리를 청취하는 이 행장이야 말로 요즘시대에 특히 필요한 최고경영자의 전형이 아닐까 생각한다. <정리= 이진우기자 rain@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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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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