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원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가장 부러워하는 직장이 됐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근무 여건이 척박해졌지만 급여만큼은 가장 높은 수준에 올라 있다. 차장급만 올라도 연봉은 1억원에 이른다. 천문학적 스톱옵션을 받는 일부 대기업 임원을 제외하면 최고의 봉급쟁이라 해도 무방할 듯싶다. 그런데 이 화려한 직장 안에도 '계급'이 존재한다. 지금이야 옛말이 됐지만 그래도 은행원의 꽃으로 지점장을 꼽는 사람이 여전히 많다. 밤 늦게까지 실적 경쟁에 시달리는 현실에도 지점장만 되면 1억 중반의 연봉이 들어온다. 세월이 달라져 갑과 을이 바뀌었지만 중소기업에 은행 지점장은 여전히 '황제'와 같다. 은행 지점장은 여전히 황제 그런데 이 지점장이 거느리는 곳에 그를 너무도 부러워하는, 아니 경외의 눈길로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 일반 행원들과는 다른 종류의 옷을 입고 있는, 바로 청원경찰이다. 그의 연봉은 얼마나 될까. 많지 않을 것이란 사실은 알고 있겠지만, 은행 안에 몸을 담고 있는데 어느 정도는 받겠거니 생각할 것이다. 신한 같은 금융지주회사가 한 해 3조원 넘는 순익을 거두니 청원경찰도 속된 말로 떡고물이라도 받을 것이라 생각하는 것도 무리는 아닐 성싶다. 하지만 실상 그들의 급여는 너무 초라하다. 한 시중은행에서 4년 반이나 청원경찰을 하고 있는 이모씨. 그의 급여 명세서를 보면 안쓰러움마저 느낀다. 지난달 명세서에 찍힌 기본급은 104만원. 연간으로 따지면 1,200만원이다. 지점장의 10분의1도 되지 않는다. 중식비 10만원과 위험 수당 5만원, 근속 수당 11만4,900원과 상여금 17만3,333원, 연차 수당 4만5,786원까지 모조리 합해도 매달 150만원을 조금 넘을 뿐이다. 건강보험료 등을 제하면 손에 쥐는 돈은 140만원 남짓이다. 근무 3년이 안된 사람은 근속수당도 없다. 명절이 돼도 빈손이다. 또 하나. 그나마 그의 돈을 중간에서 떼는 곳이 있다. "월급 몇 푼 된다고"라며 믿지 못하겠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청원경찰은 은행을 위해 일하지만 은행 소속이 아니다. 은행이 자회사로 두고 있는 별도의 용역회사 소속이다. 이 회사는 아무 역할이 없는, 그저 인건비 절감을 위해 만든 사실상의 '페이퍼 컴퍼니'다. 그런데 다리 하나 걸치면서 급여 일부를 뗀다. 심하게 표현해 '벼룩의 간을 빼먹는' 형국이다. 물론 비교할 것을 하라고 비판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청원경찰과 힘든 경쟁을 뚫고 지점장에 오른 사람을 같은 잣대에 올려놓는 게 맞느냐는 것이다. 옳은 지적이다. 사회주의적 발상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같은 무대에 올리는 이유가 있다. '이익의 공유'라는 개념이 아닌 '배려'의 틀에서 봐달라는 얘기다. 요즘 금융권의 화두는 '공생'이다. '따뜻한 금융'이라는 미사여구가 등장하고 천문학적 돈을 들여 경쟁하듯 각종 사회공헌재단을 만들고 있다. 탐욕이라는 비판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짓이다. 박탈감 안들게 배려 나서야 하지만 모든 실천은 가까운 곳에 시작된다. 몇 ㎡되지 않는 공간에서 자신의 열 배를 연봉으로 받는 모습을 보는 박탈감이 어떠할까. 최저 임금을 갓 넘는 급여가 떨어져 나가는 기분을 수억, 수십억 연봉의 은행장은 알지 못할 것이다. 1990년대 중반 '옥수동에 서면 압구정동이 보인다'는 싯구절이 회자된 적이 있다. 포만과 박탈이 공존하는 은행 지점이야말로 오늘의 옥수동과 압구정이 아닐까. 새해에는 화려한 공생의 구호가 아니라 은행 지점처럼 주변의 작은 공간부터 배려의 마음이 깃들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