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오늘의 경제소사/ 5월 31일] <1710> 레이디 고디바


전쟁과 폭정으로 신음하던 11세기 중엽, 영국의 코번트리. 영주 레오프릭의 가혹한 세금으로 농민들이 몰락해갈 때 구원의 손길이 내려왔다. 주인공은 영주의 두번째 부인인 17세의 고디바(Godiva). 농민을 위해 세금을 경감해달라는 부인의 간청을 영주는 '철없는 동정'이라고 비웃었다. 고디바의 애원이 계속되자 영주는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채 말을 타고 마을을 한 바퀴 돈다면 고려해보겠다는 조건을 걸었다. 고디바는 고민 끝에 실행에 나섰다. 주민들은 영주 부인에게 존경심을 보낸다는 뜻에서 모든 집의 창문을 커튼이나 나무로 가렸다. 단 한 사람, 호기심 가득한 양복 재단사 톰(Tom)을 빼고는. 결국 고디바의 나체 시위로 농민들은 세금을 경감 받았다. 고디바의 알몸을 훔쳐봤던 재단사 톰은 죄를 받아 눈이 멀었는지, 분노한 주민들이 장님으로 만들었는지 시력을 잃었다. 관음증을 뜻하는 영어 '피핑 톰(Peeping Tom)'이 이런 연유로 생겼다. 정복왕 윌리엄이 단행한 전국 호구ㆍ재물조사의 결과물인 둠스데이북에도 이름이 올라 있는 레오프릭의 부인 고디바가 언제 나체 시위를 벌였는지는 분명치 않지만 코번트리에서는 매년 축제가 열린다. 고디바 축제의 기원은 1678년 5월31일. 코번트리 지역 박람회의 눈요깃거리로 시작됐으나 얼마 안지나 고디바 축제만 남았다. 요즘도 해마다 수십만명의 관광객이 몰려든다. 고디바 축제의 성공을 지켜본 벨기에의 초콜릿업자들은 1926년부터 '고디바 초콜릿'을 출시, 유명 상표로 자리잡았다. 나체 시위의 원조로도 간주되는 고디바는 단어 속에 이름을 남겼다. 숭고한 뜻을 관철시키기 위해 관행이나 상식을 뛰어넘는 논리와 행동을 일컫는 단어 고디바이즘(Godivaism) 속에 고디바의 인간 사랑이 살아 숨쉰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