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21C 가교… 위기를 극복하자(선택 97)

◎한국경제 「총체적 위기」 국면/내핍만이 살길이다/과소비·내몫찾기 “이제 그만”정축년 새해가 밝았다. 경제전문가들은 해가 바뀔 때마다 각종 현안을 들어 국민적 각성을 당부하며 덕담처럼 새 각오를 다지라고 하곤 했다. 유독 올 새해에는 이들이 비장하리만치 심각한 어조로 우리 경제의 「총체적 위기」를 일제히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경제주체 모두 뼈를 깎는 각오와 경제회생의 노력이 있어야만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말한다. 전후 시장경제체제의 쇼윈도라고 치켜세우며 한강의 기적을 칭찬했던 서구 언론들도 어느때부터인가 「한국의 기적은 끝났는가」라며 한국경제의 위기론을 내놓고 있다. 한때 「한국을 배우자」며 이른바 「Look East」정책을 펴며 한국배우기연수단을 보내던 동남아국가들이 「한국을 교훈으로 삼자」며 한국의 경제위기를 타산지석으로 여기고 있다. 전문가들이 제기한 「97년의 위기와 혼돈」의 실상은 각 분야에 걸쳐 실로 적나라하다. 외채가 1천억달러를 넘어 올해는 1천3백억달러에 이를 전망이다. 지난해의 경상수지적자 2백30억달러도 올해 여전하리라는 전망이다.지난해 경상수지적자규모는 사실상 세계 최대 규모다. 미국의 적자 1천4백억달러를 들어 우리가 2위라고 강변할 수는 없다. 미국의 경제는 우리경제와 질적, 양적으로 다르다는 것은 불문가지다. 94년말 멕시코의 경제위기 때 멕시코의 외채는 1천2백80억달러, 경상수지적자는 2백80억달러였다. 좋든 싫든 비교대상은 멕시코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제 정부나 기업, 가계 모두 경제위기를 인식하고 인정해야 한다. 특히 정부가 경제위기를 인정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위기를 인식하고 인정하는 토대 위에서 대응책을 찾을 수 있다. 경제위기를 획기적으로 타개하지 않고는 겨우 3년 남은 21세기를 기약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새해부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회원국이 된 우리나라는 개발연대처럼 국제적인 규율을 무시하고 환율조작 등 국내용 응급조치로 사태를 호도하려는 시도조차 불가능하게 됐다. 이제 정부는 그동안 온실에 안주해온 국내 산업이 곧 몰아닥칠 개방 충격을 스스로 견뎌내도록 방관만 해야 할 형편이다.<유석기> ◎위기 방치땐 제2멕시코 전락/정부 「신경제」 실패 각성/정권 초연한 비전제시를 대외여건이 아무리 나빠도 국내 경제주체들이 이겨낼 자세와 각오가 확고하다면 두려워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동안 「세계화」니 「선진국 진입」이니 하는 섣부른 구호에 휘말려 국민들은 너나없이 근면절제 정신을 망각하고 과소비에 탐닉하며 내몫찾기엔 핏발이 서는 「의식의 무정부상태」에 감염되고 있다. 보릿고개에서 1만달러 소득을 이룩하기까지 우리 경제를 지탱해온 사회기강은 거의 송두리째 무너진 채 각 경제주체들이 힘모아 쌓기보다 쪼개먹기에 급급한 「도덕률의 혼돈」 속을 헤매며 세기말로 치닫고 있다. 새해들어 우리 국민은 현행 헌법상 금세기 마지막 대통령을 선출한다. 이번에 뽑힐 국가지도자는 21세기의 국가 명운을 여는 대업을 맡게 된다. 그러나 대선을 11개월 가량 남긴 이날까지도 정치권은 역사의 대전환기를 이끌 바람직한 지도자상을 수렴하기는 커녕 권력욕에 홀려 시대착오적인 당리당략과 지역분파로 질척거리는 모습만 보이고 있다. 지난해 잠수함침투사건 이후 경색국면으로 치달은 남북관계는 연말 늦게 북한측의 옹색한 사과 제스처가 나오면서 새해들어 일대 국면전환을 모색할 조짐이다. 북한의 경제 상황으로 미루어 새로운 협력관계 설정과정에서 우리측은 무수한 난제와 부담을 떠안을 것임이 거의 확실하다. 지난 연말 일가족 17명이 북한을 집단탈출한 것은 향후 남북정세 변화가 어디까지 치닫게 될지 예측키 어렵게 만드는 대표적 사례다. 체제 붕괴 후 2∼3년만에 줄잡아 4백만여명이 몰려내려올 거라는 미확인 추계가 전해질 정도로 최근 통일문제의 불확실성은 걷잡을 수 없이 증폭되는 실정이다. 지난 4년간 문민정부는 역대 어느 정부도 시도치 못한 금융실명제 등 과감한 개혁조치를 단행했다는 평을 얻었다. 하지만 워낙 두터운 적폐 때문인지 개혁의 효과가 발휘되기도 전에 국민들은 고개를 흔들고 있다. 국민들은 신경제로 표방된 경제정책이 참담한 실패로 끝나자 그동안 보낸 갈채에 대해서조차 합당한 평가를 유보하는 입장이 되었다. 거시지표로 따져본 각 정권의 경제성적표에서 얼핏 「문민」의 점수는 상대적으론 그리 나빠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신경제5개년계획상 97년의 목표는 물가 3.2%, 국제수지 37억달러 흑자였다. 반면 최근 민간연구소의 새해 경제전망을 보면 물가 5%선, 수지 1백80억달러 내외의 적자라는 엄청난 괴리를 보인다. 전문가들은 새해의 위기가 그 어느 해와도 본질적으로 다른 구조적 성격이라고 입을 모은다. 따라서 너나없이 경제체질 개선, 거국적인 내핍과 저축, 정부축소 등 근본적 개혁만이 유일한 타개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대우경제연구소 이한구 소장은 『새해들어 정치, 노동, 외자유입, 남북문제 등 불확실한 요소가 너무 많다』며 『고통이 따르겠지만 물가안정에 더욱 힘쓰는 등 일단 선택한 목표를 끝까지 지키는 고집스러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21세기에의 가교인 1997년. 엄습해오는 위기와 혼돈을 슬기롭게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인가. 국민 각자가 산적한 대내외 어려움과 맞서 이겨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하루빨리 되찾을 수 있도록 정권에 초연한 비전 제시와 굳센 실천이 무엇보다 긴요하다는 지적이다. 정확히 1백년 전인 1897년. 조선조 마지막 임금 고종은 러시아공관에 칩거하던 1년여의 「아관파천」을 떨치고 대한제국을 수립, 꺼지는 국운을 되살리려 몸부림쳤다. 그러나 대한제국은 곧장 열강의 이권각축장으로 변하고 마침내 일제의 마수에 국권을 침탈당했다. 올해는 그 치욕의 역사가 남긴 의미를 새삼 곱씹어봐야 할 때다.<유석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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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석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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