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세계의 사설] 도마에 오른 유럽의 중동 정책

이미 지나간 일로 잘 알려지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지난해 11월 리비아의 독재자 무아마르 카다피 원수는 유럽연합(EU)과 아프리카국 수장을 초청해 수도 트리폴리에서 정상회의를 개최했다. 장황한 회의 끝에 나온 공식 성명 내용은 "이번 정상회의 참가자들을 따뜻이 맞아주고 정성스럽게 대접해준 사회주의 리비아아랍공화국 자마히리야(리비아의 공식명칭)의 대표 카다피에게 무한한 감사를 표한다"였다. 한마디로 EU 수장들은 카다피 원수에게 비굴하기 그지 없는 존경심을 표한 것이다. 정상회의 이후 3개월 만에 반정부 시위로 카다피의 권좌가 위태로운 지경에 이른 것을 고려해 본다면 EU의 대(對) 북아프리카ㆍ중동 외교 정책이 얼마나 체계가 부족한지 짐작할 수 있다. EU 외교정책의 헛다리 짚기는 이후에도 계속됐다. 지난해 12월 처음으로 튀니지에서 민주화 열기가 피어오르자 프랑스는 튀니지 독재자 지네 엘아비디네 벤 알리 대통령이 민주화 시위를 진압하는 것을 도와줬다. 그러나 벤 알리 대통령은 결국 외국으로 축출됐다. 유럽의 암묵적 지지를 받았던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도 민주화 시위에 무릎을 꿇고 하야했다. 카다피의 오랜 친구였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는 카다피가 사면초가에 몰리자 동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이러한 사건이 속속 벌어지고 있는데도 그동안 EU는 회원국끼리 머리를 맞대고 아랍 외교정책에 관해 허심탄회하게 논의한 적이 없었다. 대 아랍 외교정책은 다른 나라들보다도 더 신중하게 접근해야 함에도 EU는 너무 오랫동안 아랍국가들을 자신들의 전략적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뒷마당으로만 간주해 왔다. EU는 지난 2009년 리스본 조약을 발효해 더 역동적인 외교 전략을 구사할 것임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캐서린 애슈턴 외교ㆍ안보 정책대표 체제하에서 이러한 야심 찬 목표는 바람에만 그쳤다. 그는 독일ㆍ프랑스ㆍ영국 등 EU 강대국의 입김에 밀려 외교정책 통솔권을 가져오지 못했다. 잃어버린 기반을 찾기 위해서 EU는 아랍 국가들이 민주정권과 독립적 사법시스템, 시민 사회를 수립할 수 있도록 적극 도와줘야 한다. 아랍국가 물품 수입을 억제하는 보호주의도 단계적으로 없애야 한다. 몰락의 길로 빠져드는 아랍 독재자들의 자산도 동결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국제정세를 파악하지 못하고 갈팡질팡하는 약해빠진 괴물이 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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