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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협이 9일로 지주회사 체제로 재편된 지 100일을 맞는다. 그런데 100일 잔치는커녕 '액운'을 떨쳐내기 위한 푸닥거리라도 해야 할 판이다. 정부와의 양해각서(MOU) 체결에 반대하는 노조는 파업에 돌입할 태세고 금융 부문 '수장'인 신충식 금융지주 회장은 취임 100일도 안 돼 돌연 사퇴 의사를 밝혔다. '파업 리스크'에 '최고경영자(CEO) 리스크'까지 겹친 셈이다.
신 회장이 금융지주 출범 100일을 앞두고 전격 사퇴 의사를 밝힌 배경은 명확하지 않다. 농협 측의 1장짜리 보도자료를 통해 밝힌 공식 입장은 '자진 사퇴'지만 세간에서는 '외부 압력설' '내부 갈등설' '희생양설' 등 수많은 시나리오가 나오고 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것은 농협 금융지주의 경영 상황이 녹록지 않다는 것이다. 농협 관계자는 "사퇴 이유는 복합적이겠지만 경영실적에 대한 부담이 작용한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참담한 경영 실적=지난달 농협이 금융지주 출범 이후 처음으로 공개한 3월 말 기준 재무제표를 보면 농협금융지주는 3월 초 사업구조개편 이후 한 달간 645억원의 수익을 올렸다. '농협'이라는 브랜드 명칭을 사용하는 대가로 농협중앙회에 지급한 435억원을 제외한 수치다. 농협의 올해 순이익 목표치(3~12월)는 1조128억원이며 이를 월간으로 환산한 매월 순이익 목표치는 약 1,013억원이다.
결국 3월 한 달간 달성한 순이익이 목표치보다 368억원 가까이 적다는 얘기다.
이를 연간으로 환산하면 순이익이 목표치에 3,680억원 이상 미달할 것이라는 전망이 가능하다. 농협 관계자는 "농협금융지주는 다른 4대 금융지주와 달리 농협중앙회에 명칭 사용료와 배당을 지급해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다. 실적이 목표치에 미달하면 농협중앙회와 경제지주의 사업에까지 악영향을 미치는 구조"라고 말했다.
농협 측은 "3월 한달 실적이 목표치보다 적은 것은 사실이지만 지주회사 체제가 안정되면 실적도 좋아질 것"이라며 애써 의미를 축소하고 있다. 하지만 익명을 요구한 농협 관계자는 "4월에도 실적이 좋지 않았다"고 인정했다.
다른 금융지주회사가 조 단위의 이익을 내는 것도 사뭇 대조된다.
농협을 둘러싼 외부 환경도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노조의 전면 파업 가능성이 상존해 있다. 오는 8월 말 정부와 농협 간 양해각서(MOU)의 세부내용을 둘러싸고 농협 집행부와 노조 간 갈등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또 금융지주회장 선출 과정에서 '낙하산 논란' 등 잡음이 일 경우 경영정상화가 더욱 늦춰질 수도 있다.
◇중앙회와 금융지주 간 모호한 관계=더 큰 문제는 중앙회-금융지주-은행 등 자회사 간 역할 분담이 모호하다는 데 있다. 농협 관계자는 "사업구조개편을 계기로 외관상으로는 금융지주가 중앙회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보이지만 실질적으로는 중앙회의 통제를 받고 있다"고 말했다. 농협의 '돈줄'인 금융자회사들이 정치적 성향이 강한 중앙회로부터 독립해 영업에 전념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지난달부터 정부에서 농협금융지주에 과도한 영업활동을 자제하도록 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경제사업 활성화를 위해 신경분리를 한 것인데 정작 금융지주의 활동만 부각되면서 견제가 들어왔다는 것이다.
농협금융이 이처럼 논란의 중심에 서면서 금융 당국도 우려를 숨기지 않고 있다. 농협은행에 대한 정기검사에 착수한 금융감독원은 중앙회와 금융자회사 간 지배구조를 중점 점검 항목에 올려놓고 있다.
한편 농협금융지주는 11일 오전 회장후보추천위원회 구성을 위한 임시이사회를 개최한다.
회추위는 회장 후보를 선정해 이사회에 통보하는 역할을 맡는다. 회추위가 회장 후보를 정하면 이사회와 주주총회를 거쳐 신임 회장을 선임한다. 회추위는 금융지주 사외이사 2명, 이사회가 추천한 외부 전문가 2명, 최원병 농협중앙회 회장이 추천한 1명 등 총 5명으로 구성된다. 현재 농협금융지주는 농협중앙회가 지분의 100%를 보유하고 있어 실질적인 지주회장 선임권은 최 회장이 행사한다는 게 농협 안팎의 중론이다.
일부에서는 후임 농협금융지주 회장의 하마평에 올라 있는 사람들 역시 올해 초 금융지주 회장 자리에 도전했던 사람들이 대부분이고 이에 따라 낙하산 논란이 재연될 경우 농협의 장기 파행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