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고(故) 문태식 아주그룹 명예회장은 누구?

아주그룹 창업주인 고(故) 문태식 명예회장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 경제가 산업화 발전 단계를 걷는 동안 농기구 사업과 시멘트 사업, 건자재 사업 등을 육성하며 한국 경제의 기초를 다진 인물이다.

문태식 명예회장은 일제시대인 1928년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1941년 서울 대창학원과 1943년 대신상업전수학교를 졸업했다. 고인은 이렇다 할 사업적 기반이 없었던 식민시대에 살아남기 위해서는 배우는 길밖에 없다고 판단해 학업에 열중했다. 후에 1946년 혜화전문(현 동국대학교) 사학과를 다시 다녔다.

1944년 방적공장에 취직하며,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으나 새로운 도전을 선택하며, 목재 관련사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문태식 명예회장은 나라의 근본인 농업이 지탱돼야 하고, 근대사회로의 전환을 위해서는 건설산업이 부흥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청년기에 농기구 자루 사업을 시작했으며 1950년대 시멘트 무역업으로 이어졌다. 1960년대 정부의 농어촌 전기보급 사업과 맞물려 나무 전주를 콘크리트 전신주로 대체하는 사업을 통해, 현재 아주그룹의 모태가 되는 아주산업의 초석을 다졌다.


서울 망우리에 설립한 6만6,116㎡ 부지의 콘크리트 전주 공장은 지금의 아주그룹의 근원이다. 1970년대에는 건설용 고강도 흄파이프(Humepipe)를 공급해 국내 굴지의 건자재 기업으로 자리매김 하고, 1980년 망우동에 레미콘 공장을 지어 레미콘 사업진출을 본격화했다.

관련기사



문태식 명예회장은 1965년 국내에서는 최초로 콘크리트 전주, 파일, 흄관 부문에서 품질인증마크를 취득했으며 1974년에는 콘크리트 전주와 콘크리트 파일의 KS인증마크 허가를 취득했다. 각종 신제품과 신기술 개발뿐만 아니라 1961년 아주산업 최초의 전주 공장인 망우공장, 1964년 흄관공장에 이은, 1975년 오산공장 준공 등 신규사업 확장에도 공을 세웠다.

1972년 연세대 경영대학원(경영연구회 14기) 수료, 1981년 한국원심력공업협동조합 이사장, 1983년에는 동국대학교 동창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아주그룹 사업의 첫 발원지인 중랑구에 토지 26만3,799㎡, 시가 400억원 상당의 사재를 기부해 국가와 사회를 위해 이바지하겠다는 신념을 실천하기도 했다. 고인의 이같은 노블리스 오블리주 실천을 인정해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2013년에 ‘48명의 자선사업가(Heroes Of Philanthropy)’ 중 한명으로 문 명예회장을 선정하기도 했다. 또 지역사회 발전과 인재육성에 이바지한 업적으로 2002년 제1회 동국청우상, 2005년 제1회 자랑스런 동국인상 등을 수상했다.

아주그룹은 장남인 문규영 회장이 창업주의 정신을 이어받아 아주를 경영하고 있으며, 2남인 문재영 회장이 신아주를, 3남인 문덕영 사장이 AJ네트웍스지주부문을 경영하고 있다.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30호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30일 오전7시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