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더블 클릭] 비운의 주민번호


인류의 비극 '홀로코스트'를 떠올릴 때마다 항상 드는 의문이 있었다. '어떻게 수많은 사람들 속에서 유대인을 찾아냈을까'. 최근 궁금증을 풀 수 있는 단초가 나타났다. 유대인 역사학자 아나 포아의 저서 '옥타비아 포르티코(Portico d'Ottavia) 13'을 통해서다. 그는 여기서 나치가 로마에서 유대인을 강제로 잡아갈 때 1938년 이탈리아 인구조사 목록과 납세자 명단을 기초로 했다고 주장했다. 성당 세례자 명부가 근거가 됐다는 얘기도 있다. 정부와 교회의 행정편의조치가 대학살의 수단이 된 셈이다.


△우리도 행정편의를 위한 제도가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나 있는 13자리 숫자, 주민등록번호다. 지금이야 주민 편의를 내걸지만 법 제정 당시만 해도 국가 관리의 편의성과 통제의 혼란 방지가 목적이었다. 1968년 주민등록증이 전면 발급될 때 지역과 거주세대, 개인번호를 담은 12자리로 구성된 이유다.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가 각각 남녀 첫 번호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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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주민등록번호는 더 정교해졌다. 앞의 6자리는 생년월일, 뒤의 7자리는 성별·출신 지역·등재순위·오류 확인의 내용을 담고 있으니 유전자 염기서열보다 더 세밀할밖에. 이뿐이랴. 수집·이용할 수 있도록 허용한 법령만 해도 무려 410개에 달한다. 이러다 보니 공공기관은 물론 금융사에서 일반기업까지 모두가 마치 제 것처럼 가져갔다. 주민등록번호와 조합하면 누가 어디서 무엇을 어떻게 했는지 훤히 들여다볼 수 있는 세상이다. 국민은 왕이긴 하되 발가벗은 왕이 됐다.

△정부가 금융이나 부동산과 같이 꼭 필요한 곳 아니면 주민등록번호를 요구하지 못하도록 하고 대체수단도 마련할 방침이란다. 개인정보유출 대란이라는 참사를 발생시킨 주범이라고 판단했기 때문. 하지만 공적 목적으로 이용해야 할 정보를 활성화라는 명목으로 방치한 책임은, 온 국민의 주민등록번호가 한낱 몇 푼에 팔리는 현실은 누가 책임지나. 그저 애물단지가 돼버린 주민등록증만 노려볼 뿐이다. /송영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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