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기자의 눈/9월 9일] 경술국치 100년…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

"이름은 사무엘. 달리기를 좋아하는 12살 소년이었습니다… 소녀의 이름은 헬레나, 그때 나이가 8살이었습니다…." 유대인의 역사와 성서 내용을 따라 이스라엘을 순례한 기자는 예루살렘의 홀로코스트 역사박물관인 '야드바쉠(Yad Vashem)'을 방문했다. 칠흑 같은 전시실에 촛불과 사진들만 놓인 일명 '어린이 무덤'은 별이 된 어린아이를 형상화하면서 나직한 내레이션으로 학살된 아이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불러주고 있었다. 히브리어로 '손과 이름'을 뜻하는 '야드바쉠'은 나치가 손으로 자행한 학살과 그 희생자들의 이름을 의미한다. 박물관은 지난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ㆍ건국한 후 1953년부터 짓기 시작해 50여년 만인 2005년 완공됐다. 600만명 학살의 역사를 되짚은 방대한 자료는 나치즘 탄생부터 유대인 구별을 위한 동공, 귀 각도, 머리 등 인체측정기, 아우슈비츠 수용소로 끌려가면서 벗겨진 신발 무더기까지 아우른다. '이름의 전당'이라는 방에는 유대인 학살을 막으려 애썼던 사람들의 사진을 붙인 꼬깔형 벽면이 천장으로 치솟아 있다. 그 주변을 도서관처럼 둘러싼 검은 책장에는 성경보다 더 두꺼운 각 파일마다 억울하게 죽은 유대인들의 인적사항과 기록이 담겨 있다. 건축가 모셰 사프디(Moshe Safdie)가 '다윗의 별'의 반쪽 삼각형을 테마로 만든 건물은 명상적이면서도 극적이다. 전시를 다 보고 건물 밖으로 나오면 눈 앞에 유대인 정착촌이 내려다 보이는데 험난한 역사를 거치고도 꿋꿋이 살아가는 그들을 보는 듯해 '자민족 중심의 이기적인 유대인'이라는 생각 대신 측은함과 공감이 남는다. 경술국치 100년을 맞은 우리는 과연 무엇을 기억하고 보여주고 있는지 자문해야 할 때다. 육중한 건물밖에 기억에 남지 않는 '독립기념관'이 일제 치하의 역사를 제대로 담고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을까. 부끄럽다. 이스라엘은 독일에서 보상의 의미로 매년 '벤츠' 택시를 무상 공급받고 있는데 우리는 위안부나 강제노역에 대한 보상도 아직 해결하지 못한 실정이다. 사건 자체를 넘어 사건을 겪은 '사람들'을 기억하려는 유대인의 노력에서 진심이 엿보인다. 감성적 호소를 통해 타민족의 공감을 끌어내는 지혜도 배워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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