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윤리 자본

경제와 윤리는 언뜻들어서 썩 어울리는 단어는 아닌 것처럼 느껴진다. 경제라고 하면 인간의 이기심과 이윤추구, 치열한 경쟁과 효율성, 정글법칙과 적자생존과 같은 비교적 살벌하고 전투적인 들을 떠올리게 되는데 반해 윤리는 각박한 현실과는 동떨어진 어딘지 진부하고 한가한 분위기를 연상하기 때문이 아닌가 여겨진다. 하이예크와 같이 `기업은 윤리적 판단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시장경제론자들의 주장도 경제와 윤리는 상호 병존하기 어려운 것임을 부추킨다. 이 같은 선입견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면 경제적으로 성공하는데 있어서 윤리는 거추장스런 장애물이나 사치스런 생각쯤으로 여기기 십상이다. 그러니까 윤리니 도덕이니 하는 것들은 아예 관심조차 갖지 않는 것이 경제의 세계를 살아가는데 유리하다는 확신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진다고 해서 이상할 것도 없는 듯하다. 과연 윤리는 경제적 성공과 번영을 가로막는 장애물인가. 그러나 경제현실은 반드시 그런 것만도 아니라는 것을 거듭 입증하고 있다. 가령 도산하거나 부실화되는 기업들의 상당수는 외부의 충격보다는 스스로 만든 부실을 감추기 위한 회계부정등 내부의 적이 주된 원인인 것으로 조사되고 있다. 윤리불감증이 문제인 것이다. 경제 전체로 보아도 윤리적 기반이 튼튼하지 못해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나라가 단기적으로는 몰라도 장기적으로 번영을 구가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런 면에서 우리경제가 외환위기에 빠지게 된 원인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물질적 부를 추구하는 과정에서 빚어진 `도덕자본의 탕진`에서 찾는 일부 전문가들의 진단은 매우 설득력있는 시각이라 할 수 있다. 윤리경영을 선언하는 기업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윤리경영이 회자되기 시작한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지만 최근 선보이고 있는 윤리경영은 내용이 구체적인 실천방안을 담고 있어 단순한 립서비스는 아니라는 인상을 준다. 기업들이 이처럼 윤리경영에 본격인 관심을 갖기 시작한 것은 윤리가 기업의 경쟁력은 물론 고객과 시장의 신뢰도를 높혀 기업가치를 향상시키는 매우 유용한 수단이라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했기 때문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개발연대의 압축성장기때는 돈벌이가 될만한 사업의 인허가를 따내 자본과 저렴한 노동력이라는 두가지 생산요소를 잘 결합하는 것만으로도 손쉽게기업을 키우고 많은 이익을 낼수가 있었다. 윤리와 같은 골치아픈 문제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었던 셈이다. 그러나 윤리적 기반이 없는 천박한 경제는 얼마안가 더 이상의 번영과 발전의 발목을 잡는 자기모순을 드러내고 말았다. 광범위한 반기업정서와 불신, 우리보다 빈부차가 훨씬 심한 나라에서도 찾아보기 어려운 빈부갈등, 일부 부유층의 도를 넘는 사치풍조와 퇴폐향락산업의 번창등은 윤리기반이 취약한 천민자본주의가 직면할 수밖에 없는 몇가지 증후군에 불과한지도 모른다. 이는 날카로운 부메랑이 되어 기업을 옥죄는 악순환에 빠진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도 든다. 기업의 투명성과 지배구조 개선등이 정부 정책의 우선수위로 자리잡게 된 것도 윤리불감증에 대한 반작용으로 해석될수도 있을 것이다. 갈수록 심화되는 빈부, 노사갈등과 반기업정서등 우리경제가 않고 있는 병을 근본적으로 치유하기 위해서는 개혁도 중요하지만 윤리자본의 축적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수 있다는 확신이 필요하다. 윤리경영은 기업의 경쟁력 강화와 규제완화를 비롯한 기업환경 개선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을수 있는 대안이기도 하다. 윤리경영이 뿌리내기 위해서는 후진적인 비즈니스 관행의 혁신 못지않게 보람있는 곳에 돈을 쓰는 소비문화의 선진화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 저축이라는 고통을 통해 자본이 축적되듯이 윤리자본이 확충되려면 윤리경영이 잠시 반짝하다가 사라지는 유행돼서는 안된다. <논설위원(經營博) srpark@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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