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22일 대치동 포스코센터 앞. 인도에서 온 두 명의 인권 활동가와 인권 변호사가 '포스코 오리사 프로젝트'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지난 2005년 포스코가 오리사주에 제철소를 세우기로 결정하자 고향을 떠날 처지에 놓인 주민들이 저항하기 시작했다. 지난달 2일에는 제철소 건설을 반대하는 주민 집에서 폭탄이 터져 3명이 숨지는 사건까지 일어났다. 이 사건은 개발에 대한 양측의 상반된 입장을 극명하게 보여준다.
국제 개발 분야의 세계적 석학인 필립 맥마이클 코넬대 교수가 이번 책에서 그 동안 경제 성장과 인류행복의 전제 조건으로 받아 들였던 '개발'이라는 명제에 근본적인 의문을 던진다. 산업화가 본격화한 20세기 중반부터 지금까지 개발은 나라와 인종, 그리고 이념을 초월해 전 지구 차원의 정치경제적인 화두였다. 개발은 '다 함께 잘 사는 세계'를 이루기 위한 경제 성장을 의미했다. 그런데 과연 개발은 인류에게 풍요를 가져다 주었는가?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믿고 있는 것처럼 경제가 발전할수록 더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되는가?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물음표를 던진다. 빈곤 퇴치를 목표로 내건 개발이 오히려 불평등과 빈곤을 심화시킨다는 지적이다. 실제로 연평균 경제 성장률이 8%에 달하고 올해 경제 성장률이 중국을 추월할 것으로 예상되는 인도에서는 5세 이하 어린이의 절반 가까이가 영양 실조 상태에 처해 있다. 또 방글라데시의 그라민으로 대표되는 빈곤층 소액 대출 사업이 악덕 사채업으로 전락하는 상황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저자는 지난 200년의 근현대 세계사를 개발이라는 일관된 관점으로 파악하면서 개발의 내용과 초점에 따라 식민 지배 프로젝트-개발 프로젝트-지구화 프로젝트-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시대로 나누어 살핀다. 그는 개발이 애초에 식민지 주민 관리를 위한 통치 프로그램으로 동원됐다는 점에 주목한다. 세계대전 종전 후 신생 독립국들이 탄생하면서 이른바 개발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이 나라들은 새로운 국가 건설의 정당성을 시민권적 사회 계약에서 찾으며 국민을 잘 살게 만드는 경제 개발을 통해 국가의 존재 의의를 인정받고자 했다. 이런 와중에 개발은 인류의 자연스러운 진화 과정으로 포장됐다. 그러나 개발은 당시의 국제 정세와 국내 상황에 편승한 인위적인 노력이었다는 점에서 일종의 정치적 기획, 즉 '프로젝트'라고 봐야 한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저자는 현재 인류가 처한 파국적 상황을 폭넓게 소개하면서 지속 가능성 프로젝트의 시대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환경과 식량 위기를 극복할 방법으로 주목 받는 전통 방식의 농업, 대체 에너지 개발로 대표되는 녹색 기술, 브라질의 식량 주권 운동 등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말한다. "이제 새로운 패러다임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전세계에서 울려 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한국은 무자비하고 극도로 경쟁적이며 점점 더 부패하는 사회 시스템을 해결하기 위해 '공정 사회'를 건설하자는 새로운 욕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에콰도르와 볼리비아는 2008년 자국 헌법에 발전을 '잘 사는 것'이라고 재규정함으로써 세계인의 이목을 끌었다."(525쪽)
개발의 참된 본래의 의미를 되찾자는 저자의 주장은 개발이란 명제만 내걸면 모든 것이 합리화되는 이 시대에 더욱 크고 깊은 울림을 준다. 2만 3,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