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DJ노믹스’ 대응 재계 생존전략 10계명

「김대중 대통령시대」에서 재계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가. 우리 역사상 최초로 야당에 의한 정권교체를 맞아 재계가 촉각을 곤두세우고 파악하는 내용이다. 김당선자의 공약, 저서와 강연 등을 통한 경제정책, 유세과정의 발언록 등을 종합, 대책마련에 부심하는게 최근 주요 그룹들의 모습이다. 주요 그룹이 나름대로 내린 결론은 「체질개선」이란 김당선자의 말과 깊은 관련을 맺고 있다. 기존의 경영관행에 대한 대수술과 강도 높은 개선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김당선자가 천명하고 있는 「DJ노믹스」(김당선자의 경제정책)를 종합, 재계가 해야 할 일을 「10계」로 정리해본다. 【편집자주】□제1계=경영의 투명성을 높여라 김대중 당선자는 대기업 정책의 핵심화두로 재벌들의 경영투명성 제고를 제시하고 있다. 비자금조성을 가능케 하는 불투명한 회계방식과 임원진을 「예스맨」(내부인사)으로 채우는 총수의 전횡이 가능한 기존 경영행태는 정경유착을 가져오고, 선진기업과 싸워 이길 수 없으며, 그 피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온다는 것. 기업들은 정부가 경영의 투명성을 거론할 때마다 『암3기 환자에게 보약을 먹으라고 강요하는 것』이라고 반발해왔다. 그러나 이제는 경영투명성을 위한 개혁에 착수하지 않는다면 국제통화기금(IMF)과 외국인투자가들이 한국에 대한 자금지원을 기피할 것이다. 좋든 싫든 경영의 투명성제고방안은 재벌들의 생존에 직결되는 개혁과제가 되고 있다. 『국제적으로 공인될 수 있는 회계제도의 선진화를 위해 결합재무제표 작성, 사외이사제 및 감사제확대, 그룹계열사간 불공정내부거래 지양, 구매 등 공개경쟁입찰방안을 서둘러야 한다』(손병두 전경련부회장)는 것. 현대그룹에 이어 기아자동차도 내년 초에 7∼8명으로 구성된 사외이사제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또 대우가 결합재무제표 작성에 착수한 것은 새정부 정책방향에 화답하는 카드로 볼 수 있다. □제2계=능력대로 살길을 찾아라 김당선자는 당선 직후 『권력으로부터 기업을 해방시키겠다. 나는 기업으로부터 덕본 게 없다』고 천명했다. 정경유착의 폐해를 근절하고, 시장개방을 통해 IMF시대에서 경쟁력있는 기업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체제를 갖추겠다고 강조했다. 그는 집권이전 야당시절 부터 대기업들이 정치자금을 주고 이권사업을 챙기는 등 정경유착의 폐해를 강도 높게 비판해왔다. 새정부는 수의계약대신 공개경쟁입찰을 활성화하고, 인허가과정에서 관료의 자의적인 개입을 최대한 막을 것으로 보인다. 재계 관계자들은 『대기업들도 기존의 낡은 경영행태를 버리고 관료와 정치권에 의지해서 특혜나 이권사업을 챙길 생각은 단념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는 곧 능력에 맞게 사업을 펴야지 권력에 줄서고, 「정치보험」을 통한 변칙적 성장은 포기하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능력대로 살 길을 찾아야 하는 시대. 불요불급한 투자의 억제, 성장보다 수익성과 현금을 중시한 경영에 나서겠다는 주요그룹의 경영전략이 자리를 잡을 것으로 보인다. □제3계=독단경영을 개선하라 그룹회장의 전횡을 규제하고, 전문경영인의 자율경영을 강화하는 것도 발등의 불이다. IMF나 새정부 관계자들은 현재의 위기를 가져온 원인으로 총수들의 무리한 사업다각화와 과잉투자를 꼽고 있다. 재계는 오너경영과 기조실중심의 경영을 무조건 비판하는 것은 경영현실을 모르는 것이라고 반발하고 있다. 총수도 경영능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경영을 할 수 있다는 것. 하지만 새정부는 어떤 식으로든 능력없는 오너의 독단경영이나 기조실을 이용한 경영은 규제하고, 전문경영인 중심의 자율경영을 활성화하는데 무게를 둘 것으로 보여 기업들의 변신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삼성이 비서실의 인력과 조직을 20% 이상 줄이기로 했으며, 효성은 사실상의 전문경영인 체제를 강화, 이런 흐름에 부응하고 있다. □제4계=부의 세습에 집착하지 말라 김당선자는 『불법적인 부의 세습을 차단하겠다. 이를 위해 상속세와 소득세를 엄정 과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재벌의 경영세습을 원칙적으로 반대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각종 탈법적인 방식으로 부의 세습을 기도하거나 탈세에 대해서는 강한 채찍을 들겠다는 입장이다. 이에 따라 경영의 대물림이나 부의 세습에 상당한 변화가 초래할 것으로 보인다. 정당한 경영권 승계가 이루어지도록 상속세 문제를 투명하게 처리하고, 능력없는 2∼3세를 무조건 후계자로 지명하는 기존관행은 점진적으로 개선될 전망이다. 부의 세습은 국민적 공감을 얻지 못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비판을 받고 있다. 상장전 증자를 한 뒤 상장후 2세들이 막대한 차익을 챙기도록 하고, 이를 시드머니(종잣돈)로 활용, 그룹의 주력사와 모기업 주식을 사들여 경영승계를 위한 안전판을 마련하는 등 적잖은 비판을 받아왔다. 이에 따라 일부그룹에서 나타난 전문경영인 회장체제가 본격화할 가능성도 높다. □제5계=구조조정에 적극 나서라 IMF와 김당선자는 재벌의 무리한 차입경영과 선단식 경영에 강한 비판을 하고 있다. 경쟁력없는 사업이나 계열사에 대해 상호지급보증과 상호출자 등을 통해 돈을 쏟아부어 결과적으로 흑자 계열사까지 부실의 늪에 빠지는 폐단이 있다는 것. 올들어 부도를 낸 기아 한나 진로 등 주요그룹들을 보면 부실계열사의 위축이 건전한 기업까지 침몰시켰다. 새정부는 이런 폐단을 시정하기 위해 재벌들이 주력사업이나 승부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도록 경영을 개선하고, 국제경쟁력을 확보하는 투자는 적극 지원할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에서 적자사업을 털어내고 승부사업에 경영자원을 집중하는 선택과 집중 등 구조조정이 적극 추진돼야 할 상황이다. 이와 관련, 전경련은 30대그룹간 매수합병, 사업이양 및 인수방안을 추진하고 있어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제6계=중기와의 갈등은 무조건 피하라 「재벌중심의 경제구조를 견제한다.」 김대통령 당선자의 경제정책 가운데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내용이다. 여기에는 재벌그룹 자체의 체질개선과 함께 중소기업 보호의지가 담겨 있다. 김당선자에 있어 21세기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의 시대다. 따라서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살리고, 발전시키는데 있어 지금과 같은 대기업 위주의 대출이나 경제정책, 특히 대기업의 내부거래나 독과점 등으로 중소기업이 피해를 보는 행위는 배제될 것으로 보인다. 재벌그룹들은 중소기업과의 협력강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 이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긴밀한 협력을 통해 공존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김당선자의 소위「쌍두마차론」이 보다 구체적으로 확인해 준다. 최근 대우그룹의 주요계열사들은 중소기업과의 해외동반 진출확대를 내년도 주요목표로 발표했다. 또 22일 삼성자동차는 70개 협력업체에 대한 내년 1·4분기중 납품대금 1백억원을 선지급했다. 두 그룹은 김당선자가 중소기업에 대해 대기업이 해주기를 바라는 바를 잘 알고 있다. □제7계=감원은 최소화하라 DJ노믹스의 노사관계론은 상호협력을 통한 공동의 이익찾기로 요약된다. 따라서 경제위기에 대응한 고용 및 임금문제는 고통분담을 통한 감원최소화로 가닥을 잡을 수 있다. 어려움에 빠졌다고 외국 기업들 처럼 대량감원을 단행하는 것은 우리정서에도 맞지 않고 오히려 생산성을 떨어뜨리는 요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다. 노사가 서로 희생을 하고, 이를통해 위기를 극복한 뒤 임금을 정상화하겠다는 것이다. 감원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으로는 사내 직무교육 프로그램 등을 통해 필요한 기능인력을 양성하고 이에 대해서는 정부도 적극 지원에 나선다는 것. 이에따라 앞으로 기업들의 경제위기 극복방안도 감원보다는 급여동결, 나아가 감봉 등의 방식으로 바뀌어야 할 것이다. 특히 사내 전직, 전환배치 등을 적극 추진할 전망. 또 노조에서도 임금동결선언과 함께 생산성 높이기 등 경제위기 극복을 위한 노력에 동참하는 새로운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제8계=수출확대에 나서라 정몽구현대그룹 회장은 최근 전 계열사 사장단이 참석한 가운데 「IMF대책 및 수출전략회의」에서 『경제를 회생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수출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키는 길 뿐이다. 각사 사장은 직접 뛰며 수출증대에 앞장 서라』고 당부했다. 현대는 그룹의 외화가득 목표를 당초 정한 2백70억달러에서 2백81억달러로 늘렸고, 종합기획실에 수출점검반을 설치, 매달 수출실적을 점검하고 계열사별로도 수출대책팀을 구성하며, 분기별로 수출확대전략회의를 갖기로 했다. 재계의 수출확대 전략은 새정부가 대기업에 바라는 여러 움직임 가운데 가장 비중이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다. IMF체제의 조기탈피를 추진하고 있는 김당선자의 입장에서 수출이야말로 가장 확실한 수단이기 때문. 이에따라 현대를 비롯한 주요그룹들은 회장이 직접 나서 수출확대 방안을 찾고있다. 최근 삼성과 대우가 단행한 인사에서 최고경영자들을 대거 해외에 전진배치한 것은 이런 점에서 관심을 끌고 있다. □제9계=자율적으로 추진하라 김당선자의 철학 가운데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율」이다. 중복과잉투자의 조정, 전략적제휴 등에서 민간경제계가 주체적으로 환경변화에 맞는 대응방안을 찾아야 한다는 것. 시장경제의 원리를 강조하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정부의 역할은 기업들의 이같은 활동을 뒷받침할 수 있는 법적·제도적 여건을 마련하는 데 주력한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앞으로 경제단체나 주요 업계가 정부의 힘에 의지해 사업을 벌이거나 신규사업 참여 등과 관련해 정부의 눈치를 보는 등의 관행은 크게 사라질 것으로 보인다. 또 주요 업종간 기업의 인수합병 등을 통한 구조조정의 바람이 불 것으로 보인다. 특히 자동차, 철강, 석유화학, 반도체를 비롯한 주요업계는 큰 변화의 바람을 맞을 것으로 예상된다. 업종·업체간에 설비나 제품을 주고 받거나 업계 자율결정에 의해 생산감축, 물량조절 등과 같은 전략적 제휴에도 적극 나서야 할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 □제10계=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하라 건국이래 최초의 정권교체, 더구나 야당의 집권은 재계를 당혹스럽게 할만 하다. 이같은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아직 확실한 방안을 마련하지 않은 게 주요그룹들의 속사정이다. 여기서 재계는 무엇보다 현실에 맞는 새로운 의식, 새로운 패러다임에 적응해야 한다. 막연한 불안이나 당혹감을 떨쳐야 한다. 어떤 경우든 기업은 경제회생의 주역이 될 수밖에 없다는 자신감을 갖고 현실을 맞을 필요가 있다. 기업본연의 역할을 찾아 실천하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 불투명한 환경에서 최선의 대응책은 기본주의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적응하되 원리원칙에 충실하는 것이다.<박원배·민병호·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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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의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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