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배출권, 거래없이 호가만 올라… 시장 조성 손 놓은 정부

첫날만 반짝… 사실상 개점휴업

내년 6월 배출량 확정 앞두고 가격 급등락 등 시장왜곡 우려

"국책은행 3곳에 무상할당 필요"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이 10거래일째 거래량이 한 건도 없는 개점휴업 상태다. 시장 도입 때부터 이미 예견된 상황이지만 정부는 여전히 문제의식을 못 느끼고 팔짱만 끼고 있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초기부터 시장조성에 적극 나서지 않으면 내년 6월 배출량 확정을 앞두고 배출권 가격의 급등락이 우려되는 등 심각한 시장왜곡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1일 환경부와 한국거래소 등에 따르면 온실가스 배출권 거래시장은 지난달 19일부터 30일까지 최근 10거래일 동안 거래량이 전무한 상태다. 지난달 12일 개장 첫날 1,190톤이 거래된 것과는 대조적이다. 개장 첫날 이후 거래가 이뤄진 것은 고작 나흘뿐이고 이마저 첫날을 제외하면 하루 거래량은 100톤 미만으로 미미해 사실상 개점휴업 상태가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달 19일부터는 아예 거래가 뚝 끊기다 보니 호가만 계속 오르는 상황이다. 이 기간 배출권 가격은 9,610원에서 9,960원으로 3.6% 상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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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장이 고사상태에 빠진 것은 시장조성자 역할을 맡은 산업은행과 기업은행·수출입은행 등 세 국책은행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들 국책은행에 시장조성자 역할을 맡도록 했지만 조성자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온실가스 배출권 물량은 할당하지 않고 있다. 이 때문에 세 국책은행은 거래를 일으키고 싶어도 시장에 내다 팔 물량이 없어 역할을 제대로 못하는 상황인 것이다.

정부는 525개 의무할당 업체에 배정한 물량(15억9,800만톤) 외에 예비물량으로 8,900만톤을 보유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일부 물량을 시장조성자에게 판매하거나 무상할당해 거래를 활성화하는 방안을 고려 중이지만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한 상태다.

거래시장이 시장으로서 제 기능을 못하다 보니 배출권을 팔고 싶거나 여력이 충분한 기업들도 눈치만 보고 있어 상황을 더 꼬이게 하고 있다. 화학업체인 H사는 그동안 글로벌 배출권 프로젝트에 참여해 국내 온실가스 배출권 시장에서 연간 200만~300만톤가량을 판매할 여력을 갖추고 있지만 거래에 나서기를 주저하고 있다. H사가 현재 호가대로만 배출권을 거래해도 200억~300억원가량의 추가이익을 거둘 수 있지만 시장동향에 촉각만 세우고 있다. 이응주 신한금융투자 애널리스트는 "H사는 올해만 300만톤가량의 탄소배출권을 판매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하지만 시장의 거래 상황이 미진하고 제대로 된 가격형성이 이뤄지지 않아 선뜻 거래에 나서지 않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시장 전문가들은 정부가 시장조성자 역할을 하는 3개 국책은행에 배출권을 무상할당해 시장조성자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도록 길을 터야 한다는 지적이다. 초기에 시장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지 않으면 내년 6월 배출량 정산을 앞두고 거래가 몰려 가격이 급등하는 등 투기양상을 보일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525개 의무 할당기업은 내년 5월까지 정부 온실가스 배출 할당량에 맞춰야 하는데 할당량보다 배출량이 많은 기업들은 시장에서 배출권을 사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거액의 과징금을 내야 한다. 결국 시장에서 정상적인 거래로 사전에 배출권을 확보하지 못한 기업들은 막판에 시장에 몰려 배출권 가격이 급등하거나 아예 배출권을 살 수도 없는 상황이 올 수 있는 것이다. 김태선 에프앤가이드 글로벌탄소배출권연구소 대표는 "시장이 현재처럼 거래가 없는 상태에서 호가만으로 가격이 오른다면 투기의 위험성이 발생할 수 있다"며 "내년 6월 배출량 확정을 앞두고 기업들의 매수세가 일시에 몰린다면 가격이 급등할 가능성이 있어 정부가 하루빨리 시장을 조성해 거래를 분산시켜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에 대해 정부는 "배출권 거래시장이 도입된 이상 각 기업들이 자발적으로 온실가스 배출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시장에서 원활하게 거래가 이뤄지지 않더라도 큰 문제는 없다"는 반응이다. 이 때문에 시장 참여자들로부터 현장을 너무 모르는 게 아니냐는 비판을 사고 있다.


강동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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