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3일 삼성의 이재용 부회장이 ‘메르스 사태’와 관련된 공식 사과를 표명했습니다. 대체로 여론의 반응은 긍정적이었습니다. 우선 국민들의 눈높이에서 문제를 언급하고, 그에 대해 책임을 느낀다는 명확한 메시지를 던졌습니다. 그리고 조직에서 가능한 한 모든 자원을 동원해 문제의 원인 파악과 인적 구조의 변화, 그리고 장기적인 대처 방안까지 이야기했습니다. 사실 삼성서울병원은 질병의 사회적 전염 구조에서 네트워크 중심에 놓여 있었던 기관은 맞지만 질병퇴치의 ‘모든’ 책임을 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그것은 국가가, 또는 보건복지부가 나서서 해결해야 될 문제입니다. 그러나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이 앞장서서 국가 차원의 질병퇴치와 함께 백신 연구개발을 통해 인류 사회에 이바지할만한 솔루션을 도출하겠다고 약속했습니다. 절대 가벼운 말 한마디가 아닙니다. 상당히 많은 조직에서 전문적인 검토와 분석을 거쳐 3~4분 남짓 되는 짧은 담화문에 가능한 전략적 대안들을 담아낸 것입니다.
이 부회장의 이야기를 듣고 한 제약회사의 의미있는 국제 공헌 사업이 생각났습니다. 글로벌 제약사인 머크(Merck)는 아프리카 일대에서 창궐하던 정체불명의 질환을 퇴치하기 위해 자사가 개발한 백신을 국제기구를 통해 무상 배포하기로 했습니다. 머크의 대표적인 CSR 활동 중 하나인 머크 프라지콴텔 기부 프로그램(Merck Praziquantel Donation Program)입니다. 2014년 CSR 연례보고서에 따르면 해당 연도에 머크가 생산한 프라지콴텔은 7,500만정을 돌파했으며, 그 해 말 WHO와 아프리카에 7,200만정 이상을 기부했다고 합니다. 2013년 대비 44% 증가한 수치만 보더라도 머크가 아프리카 열대 풍토병인 주혈흡충증 퇴치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누군가의 지원 없이는 고통을 온몸으로 견뎌낼 수밖에 없는 많은 사람들이 머크사의 결단을 통해 치유될 수 있었습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Corporate Social Responsibility) 활동은 단순히 이미지 관리를 하기 위한 전략이 아닙니다. 회사가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 커뮤니티에 대해 얼마나 애정을 가지고 실제 행동으로 배려하느냐의 문제인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삼성은 이번 메르스 사태를 통해 진정한 사회적 기업가정신(Social Entrepreneurship)을 발휘할 수 있는 중요한 모멘텀을 잡은 셈입니다. 특히 의료 현장의 백신 연구 개발은 투자 대비 성과를 가늠할 수 없는, 상당히 모험적이고 어려운 프로젝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익성과 성장성을 가늠할 수 없는 과제에 투자하겠다고 실질적인 최고경영자가 단언한 사례는, 상당히 고무적이고 뜻깊은 일입니다.
이번 이 부회장의 사과는 또 다른 의미도 갖고 있습니다. 글로벌 경쟁 환경에서 기업들끼리 서로 차별화된 가치를 갖기 어려워진 국면에서 대중과 소통할 수 있는 일종의 ‘인터페이스’를 개발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삼성이 주력하고 있는 분야인 제조 부문에서는 기술이나 제품의 구성이 동형화되어가는 상황입니다. 상품 자체의 경쟁력이 사용자 경험(User Experience)이 어떤가에 달려 있을 정도로 기업 주도에서 소비자 주도로 힘의 중심이 넘어간 모양새죠. 사회학자들은 이런 상태에서 기업이 살아남으려면 자기 나름의 ‘코드(Code)’와 ‘정체성(Identity)’을 개발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유럽 사람들이 다른 나라 브랜드의 장점과 기능, 가격의 경제성을 잘 알면서도 냉장고나 세탁기, 자동차를 잘 바꾸지 않는 이유도 결국은 문화 코드 때문입니다. 전화위복이라고 했습니다. 메르스가 빚은 위기(?)와 혼란을 바탕으로 또 다른 도약의 계기가 만들어질까요? 일단 최고경영자의 결단력은 합격점인 것 같은데요. /iluvny23@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