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0년 7월19일, 은행과 보험ㆍ증권사 임직원 431명이 쫓겨났다. 해직사유는 비리. 금융권은 충격에 빠졌다. 유례가 없는 일인데다 규모도 컸기 때문이다. 불만이 많았지만 누구 하나 끽소리도 못 냈다. 신군부의 서슬은 그만큼 시퍼랬다. 숙정 주도세력은 국가보위특별위원회. 국보위는 왜 민간 금융회사까지 손댔을까. 민심을 강제로 수습하기 위해서다. 12ㆍ12와 5ㆍ18을 거치며 얻은 권력을 더욱 굳게 다지고자 동원한 카드가 이른바 ‘사회정화’. 금융계 숙정도 삼청교육대, 비리 공직자 추방과 같은 맥락에서 추진됐다. 피해가 집중된 곳은 은행권. 은행장 4명, 전무급 10명, 임원급 31명, 부ㆍ점장급 159명, 차장급 86명 등 모두 355명이 직장을 잃었다. 숙정 기준은 부패와 비리였지만 실제로는 회사별 할당이 떨어진 가운데 진행됐다. 당연히 저항이 따랐지만 이의를 제기하면 구속하고 해당 기관장과 관련 공무원을 문책한다는 정부 방침에 모두가 숨을 죽였다. 숙정의 태풍을 비켜간 곳은 투금(단자)업계. 해외교포 자본으로 설립된 한 회사의 대주주가 신군부와 끈이 닿아 업계 전체가 특혜를 입었다. 정부와 공기업도 마찬가지. 모두 8,877명이 잘렸다. 그나마 해직 공직자는 1989년 잘못을 인정한 정부로부터 선별 복직과 봉급의 60% 수령이라는 보상을 받았지만 금융 해직자들은 역사 속에서 묻혀졌다. 정의사회를 만들겠다며 금융인들을 숙정한 뒤 물이 맑아졌을까. 천만의 말씀이다. 신군부와 친했던 어떤 인사는 금융권 황제로 행세했다. 하루아침에 대리에서 부장으로 승진해 결국 은행장 자리까지 오른 사람도 있다. 정치적 숙정은 금융혼란으로 이어졌다. 이철희ㆍ장영자 부부 어음사기 사건과 명성 사건 같은 권력형 금융 부조리가 터진 게 바로 이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