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로터리] 한자교육보다 더 중요한 것


한자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자주 보인다. 문용린 서울시교육감은 지난달 말 "초등학교부터 한자교육을 확대해 서울시교육청 특색사업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노영민 의원은 4월 '한자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책토론회'를 열어 "오랜 세월 우리 사고와 생활방식에 녹아온 한자어를 교육해 국어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어휘력 향상을 도모하고 우리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한자를 공부시켜 우리 문화정체성도 굳히고 창의력을 높이고 인성교육을 강화하겠다고 주장하는 것 같다. 한자를 공부시키면 과연 그렇게 되는 될까.

언어는 말과 글이다. 글자는 말을 표시해 전달하고 정보를 기록한다. 본질 기능을 충실히 할 수 있는 글자가 좋은 글자다. 글자로서 한자는 좋은 글자일까.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이들은 한자를 알면 말뜻을 잘 알 수 있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자주 쓰는 낱말인 경제ㆍ사회ㆍ문화ㆍ철학ㆍ과학 등을 한자로 적으면 뜻이 더 쉽게 전달되는가. 한자를 적어서 뜻이 쉽게 떠오를 글자는 산ㆍ천ㆍ초ㆍ목 등 1차 뜻을 가진 글자로 많지 않다. 저들이 결합해 '산천초목'이 되면 이미 뜻이 달라진다. 대부분의 말은 글자 자체에서 뜻을 아는 것이 아니고 그 말을 배우고 익혀서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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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선조가 남긴 기록은 대부분 한자로 적혀 있기에 옛 기록을 읽으려면 한자를 알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걸까. 그걸 위해서라면 한자를 연구하는 사람을 길러 내면 된다. 온 국민이 난중일기나 왕조실록을 원본으로 읽을 필요는 없다. 온 국민이 원본을 읽게 하려고 한자교육을 주장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물론 말을 공부할 때 한자 어원을 같이 공부하면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 언어학자와 같이 그럴 필요가 있는 사람은 그렇게 공부하면 된다. 한자는 필요한 사람만 공부하면 된다.

한자교육을 강조하는 세태의 한편에는 말을 엉터리로 쓰는 사람이 뜻밖에 많다. 엉터리 낱말을 쓰는 것도 예사고 제법 배웠다는 사람도 높임말을 엉터리로 쓴다. 언어는 생각을 나누고 정보를 전달하고 기록하는 도구이니 올바르게 써야 한다. 언어를 정확하게 쓰지 않으면 정보가 잘못 전달되고 이는 엉뚱한 결과로 이어진다.

한글은 효율이 아주 높은 글이다. 같은 문장이라도 한자를 섞어 쓰면 읽는 속도가 뚝 떨어진다. 외계어 같은 한자를 공부시키는 것보다 우리말, 우리글을 제대로 가르치는 것이 더 급하다. 우리말과 글을 배우기에도 시간이 모자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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